늦은 아침 이불속에서 걸어나와 화장실에 붙어있는 거울앞에 선다.
누구시더라...
언뜻 거부감마저 일 정도로 화석화된 얼굴이 거울안에 있다.
이게 나던가...
되돌리기와 재생이 단순 반복되는 하루.
치약처럼 찔끔찔끔 없어지는 한 해.
더 이상 치약이 짜지지않으면 밑둥부터 꾹꾹 눌러 주둥이로 치악을 몰아놓고 며칠을 쓰다가
급기야는 가위까지 동원 해 반으로 싹둑 잘라 잘라진 입구를 벌려
칫솔을 들이밀어 또 며칠 버티곤 했었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늦은 아침에 혼자 일어나 거울을 보고 이빨을 닦았다.
같이라는 말조차 까마득하고 혼자라는 말이 익숙한 결혼생활.
그렇다,난 결혼한 여자다.
그것도 열일곱번이나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왔다.
다시 시작하기엔 조금 늦은 마흔두살이기도 하고...
뭐,그렇다.
올 해도 어김없이 재야의 종소리를 나 혼자서 들었다.
마지막날 12시전에 들어올듯한 남편의 전화를 받았지만
남편은 새벽3시에 술에 찌들어서 들어왔다.
난 한마디의 말도 안했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17년의 결혼생활동안 재야의 종소리를 같이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아! 딱 한번 있었구나...
몇년전 직원들과 겨울여행을 떠나적이 있었다.
31일날 밤에 출발을 해서 차 안에서 "쿵"가슴을 울리는 재야의 종소리를 들었었지...
새벽녘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남편은 직원들과 아침이 오도록 술 마셔가며 화투를 쳤었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 놈의 직원들하고 놀러를 간적이 없었다.
남편은 같이 가자고 했지만 밤새도록 화투치는 소리에 밤을 꼬박 새웠던 내가 있었는데 가겠냐고...
오늘도 거울을 보며 비워야 살아남는 나를 만난다.
그래도 마음 어딘엔가 욕심의 건더기가 남아 있다는 것도 안다.
나도 인간은 인간인가보다.
나도 살고 싶긴 살고 싶은가보다.
세상것에 끌려가지 않으려해도
남편과 함께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른 오징어와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싶은 여자인가보다.
거울속의 자화상.
두 눈이 흐리터분하고 눈 밑이 검게 응달이졌다.
외로움속에서 아우성치는 누리틱틱한 얼굴색과 피가 돌기는 도느건지 입술이 푸리딩딩하다.
신기한 것은 유독 눈동자가 산사람처럼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그래, 난 살아있어.
결혼했던 85년에도 살아있었고
17년이 지난 2002년 지금도 살아있다구...
철저히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자유롭게 홀로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사는 것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한 남자로 인해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싶었다.
어떤 결혼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인생이냐가 결정되는 세상이 싫었다는 것이
내가 철저히 혼자이고 싶은 이유였다,
그러나 온갖 인연의 고리는 하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난 혼자인 나와 놀아 주기로 결정을 했다.
오년전부터...
혼자임은 하나님이 내게 준 처절한 선물이 아닐까.
이렇게 혼자임을 직시하기 까지는 벼락처럼 일순간에 내리치는 것이 아니고
가랑비처럼 서서히 서서히 나를 적셨다.
결혼내내 남편의 부재는 남편이 좋아해서 선택했고
팽팽했던 남편의 끈을 뚝,놓았을 때의 편안함.
이래야만 했던 나를 남들은 알까?
가식이 섞인 자유로움과 웃다가도 눈물이 흐르는 외로움이 있지만
이 외로움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난 행복하지 않다.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불행하다.
그렇치만 행복이란 계산법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로 시작한다.
빼고 빼고 자꾸 빼다보면 난 나도 모르게 행복해져있다.
햇살이 앞베란다로 다정하게 들어오는 집이 있고(남편의 방랑벽으로 인해 빚이 집채만큼 있지만)
이쁘장한 딸과 인정많은 아들이 있고(매달 생활비가 부족해 최소한 줄여 쓰지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건강이 있다.(너무말라 징그럽지만)
욕심의 건더기가 가끔씩 둥실 뜰때가 있다.
그때마다 들판에 지멋대로 피고 자라는 들꽃을 본다.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우고 있는 이혼한 친구를 생각한다.
거울앞에 서서는 화장을 정성껏 한다.
그러면 아까까지만 해도 칙칙하던 내가 화사하게 살아난다.
그리고나서 나와 놀아주면 되는 것이다.
자고 싶어하면 재워주고
먹고 싶어하면 먹여주고
외출하고 싶어하면 나가주고
들꽃이 보고 싶다하면 보여주고...
이런 친구가 세상엔 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친구는 언제나 거울앞에 서 있는 내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