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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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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3]구사일생


BY ns05030414 2001-12-04

동네 앞 냇가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는 공해라는 말이 없었다.
물 속을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돌들이 둥글둥글 환히 보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 여기저기 물을 막아 둔 곳들이 있었고, 그 곳은 동네 아이들에게 신나는 야외 수영장이 되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곳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옷을 벗어 둑위나, 냇가의 자갈밭에 두고 물 속에 뛰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은 팬티까지 벗어버리고 조금 큰 아이들은 팬티만 입고...
물 속에서 놀다 추우면 둑이나 자갈밭으로 나와 햇볕에 몸을 말렸다.
햇볕에 따끈따끈하게 덮혀진 바위나 자갈밭에 눕거나, 엎드려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햇볕에 말리면 금방 추위가 가셨다.
해가 구름에 가리워 쉽게 추위가 가시지 않으면, 두 손으로 엉덩이를 두드려 장단을 ???팔짝팔짝 뛰면서 이런 동요를 불렀다.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치국에 밥 말아 먹고
장구치고 나오너라."
추위가 가시고 햇볕이 따갑게 느껴지면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배가 고프면 집에 와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보리밥 한덩이 찬물에 말아 후루룩 먹고 다시 뛰어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즐거운 수영이 우리에겐 금지되어 있었다.
우리 큰 언니는 결혼 후 11년 만에 간신히 얻은 딸이라고 하였다.
그 뒤로 딸, 딸을 얻고 끝으로 아들 하나를 얻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에게 허용되는 많은 일들이 우리에겐 금지사항이었다.
조그만 위험이라도 내포된 일이면 금지되었다.
냇가에서 동네로 들어오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동구 밖 느티나무 밑에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었다.
구경만 하고 물 속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할아버지에겐 거짓말이 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들 다리를 한 번 긁어 보는 것으로 금방 알았다.
흰 줄이 생기고 안 생기고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였다.

어른들이 금지하면 더욱 하고 싶은 게 아이들 심사다.
남동생과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동생이 일곱 살 내가 열살이던 해, 둘이는 어른들 몰래 수영을 가기로 하였다.
우리를 부추긴 것은 나와 동갑이었던 임실 고모 딸이었다.
나와 동갑인 미숙이는 수영을 잘한다고 하였다.
개헤엄 뿐 아니라 자유형도 자기는 할 줄 안다고 자랑이었다.
물 속에 머리를 쳐 박고 발을 통탕거리며 간신히 물에 뜨는 정도에 불과했던 나는 부러웠다.
내 또래도 잘하는 아이들을 물 속으로 잠수하여 제법 먼 거리도 가곤 하였다.
노냥 물 속에서 사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내게는 그 아이들이 그리 멋있고 잘 나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미숙이는 자기가 우리에게 수영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가자고 하였다.

그 날 따라 이상하게 냇가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장마 끝이라 물이 불어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던지도 모르겠다.
미숙이는 물이 깊은 곳에서 연습해야 헤엄치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물이 깊은 곳으로 갔다.
냇가에 간 미숙이는 발뺌을 했다.
자기는 피부병이 있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그러나 나는 물을 보고 그냥 거기서 단념할 수는 없었다.
옷을 벗어 미숙이에게 지키라고 하고서 물 속으로 들어가 멍청이헤엄을 즐겼다.
우리는 머리를 물 속에 쳐 박고 발만 통탕거리는 것을 멍청이헤엄이라고 불렀었다.
한참을 신나게 통탕거리고 있을 때 미숙이가 당황하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숙아, 성옥이가 물에 빠졌어!"
얕은 곳에서 놀던 동생이 미끄러져 깊은 곳으로 빠진 것이다.
허우적거리는 동생을 본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동생에게 쫓아갔다.
물은 우리 두 사람의 키를 훌쩍 넘었다.
허우적거리던 동생은 내 다리를 움켜 잡았고, 나도 같이 허우적거렸다.
멍청이 헤엄 밖에 칠 줄 모르던 내가 동생을 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다리가 생명이었다.
손으로 잡고 발을 통당거리며 나오는 방법이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생존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그 다리를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면서 물이 벌컥벌컥 목을 넘을 때 마다 어른들이 주의하던 말이 생각났지만 이미 늦은 것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동생이 잡았던 발목을 슬그머니 놓은 것이다.
발목이 자유로워진 나는 멍청이헤엄을 쳐서 물가로 나왔다.
동생은 물 속에 가라앉았는 지 보이지 않았다.
놀라고 무서운 나는 바위에 기대고 엉엉 울었다.
그 때 미숙이가 소리쳤다.
"남숙아 성옥이가 물에 떴다."
동생은 하늘을 향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동생이 물가로 나올 수 있도록 손으로 물을 내 앞으로 끌어 당기자 물결을 따라 동생이 나 있는 곳으로 밀려왔다.
얼른 받아서 둑 위에 눕혔다.
그리고 엄마가 하던 인공호홉 흉내를 냈다.
동생은 어려서 툭하면 기절을 잘 해서 엄마가 인공호홉을 하곤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며 자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것은 인공호홉도 아니었지만 아뭏든 나는 엄마의 흉내를 내서 동생의 코를 힘껏 빨았다.
몇 번이나 했을까?
동생은 갑자기 이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젠 되었다!"

사 십 년이 되어가는 옛 일이지만 눈에 선한 기억이다.
기억할 때 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하마터면 우리 부모의 확실한 노후대책을 불안하게 할 뻔 하였던 사건이다.
딸이 아무리 잘 해도 딸 덕 보는 것은 마음 편할 수 없는 세대가 우리 부모 세대다.
많이 못 살게 굴고 질투하며 함께 자란 동생인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지금 고백한다.
우리 부모님에겐 그래도 아들이 최고였다고...
심성 고운 남동생을 그 때 잃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다 늙어서 행여 얻지 못 할까 맘 졸이다 얻은 아들이라고, 끔찍이도 동생을 사랑하던 어른들 생각이 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님에겐 비밀이었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