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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드셨어요?'


BY 소영이 2003-07-26

“야, 점심먹으로 가자!  이것들이 왜 점심 먹으러 갈 생각을 않 해?!”

“교대 해야죠. 은희 밥 먹으로 갔어요. 와야 가죠.”

“왜? 우리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우리가 언제 기다렸냐?  야! 뭐해! 빨리 가자니까!~”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로 에어컨을 끄고, 불을 끄고, 창을 닫고, 먼저 나간 이사 뒤를 아무 말 없이 따라 나간다.  부장도, 계장도, 직원도.  나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나간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대리는, 이제 점심은 혼자 어떻게 할 꺼냐는 식으로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본다.

“사무실 열쇠나 주고 가요.”

아무 말 없이 열쇠를 놓고 나간다.

업무팀의 은희는 나랑 같은 여직원으로, 사무실에 교대해 줄 사람이 있음 같이 나가 먹고, 그렇지 않으면 나랑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데, 오늘은 우리가 교대할 생각으로 같은 팀원이랑 나갔다.  그런데 그걸 못 기다린다고, 너는 알아서 먹으라고 사람들을 다 데리고 나간다.  사람들이  빠져 나가버린 사무실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닫았어도, 덥지 않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이라도 시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중, 회사로 전화가 온다.  침착하게, 목소리를 내어 전활 받으니, 계장님이다.

“은희 나갔어?”

그냥 끊는다.  차에 시동 까지 걸고선, 이제와 알아서 뭘할까?  괜시리 다이어리를 뒤적인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린다. 눈물이 나올려고 한다.  울면 안되는데...  울면 안되는데...  벌써 눈물이 흐르고, 한 손은 화장지를 찾는다.  그러다, 주체할 수가 없게, 와락 쏟아진다.

흐느끼고 울고 있는데, 은희가 왔다.  그들이 나간지, 5분도 채 안 돼서다. 

“왜 그래? 울어?  왜 그래....”

“나만 빼 놓고 다들 밥 먹으러 나갔어.”

은희는 나를 달랜다.  그리고 그들을 같이 욕해준다.  약 1시간 여를.

 


나갔던 사람들이 왔다.

“아~~  우리, 순대야채볶음 먹었다!, 김소! 너 삐졌냐?  밥 않 먹었어? 야! 가서 빵 사 와!”

이젠, 화가 난다.  않 봐도, 내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됐을거다.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강당에서 부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언제나 식후엔 담배를 피웠다.  그의 뒷 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화장실에 갈 생각으로 사무실을 나왔는데, 나의 발길은 저절로 옥상계단으로 향한다.

그렇게 울었는데도, 이제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끈적이는 7월의 오후 속에, 저 멀리 고속도로 위로 차들은 쌩쌩 거리며 달려가고, 근처 논에는 새 한 마리가 한적하게 거닐고 있었다.  벽을 보며 울었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내가 여기서 이렇게 울고 있는 건 아무도 모를 거라고.  고속도로 위로 쌩쌩 달려가는 자동차 속 사람들도, 근처 논에서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새 한 마리도, 방금 밥을 먹고 온 우리팀원들도.  숨 죽여 울다, 흐느낌이 시작 됐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울었다.  사무실에서 나를 찾던 말던, 정말 당당하게 시간을 내어 울고 싶었다.  따끈따끈한 햇볕이 내 목덜미에 와 앉아 고갤 들 수 없게 만들었다.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누가 오던 말던, 알고 싶지도 않았고,  창피하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계장님이다.  은희가 얘기해 줬나보다.

“...배신감 느꼈어?”

“...아니.  소외감 느껴....  사무실에서 나 찾아요?.”

“아니.”

"아까, 그냥 전화 끊어서 미안해요...“

“왜 끊었어.”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말을 할 수 가 없었어.”

“내려오라고 할려고 했더니.”

“말이 그렇지.  그렇게 사무실 비우고 나갔다가, 무슨 일 이라도 나거나, 사장님한테 전화 라도 와 봐, 그거 다 누가 뒤집어 쓸려고 그래?”

“..하긴.  맞아.”

“이사님이야 원래 그러니까, 그렇다 치지만, 그래도 부장님은, 부장이니까, 부하직원 하나쯤은 챙길 수 있는 거 아냐?  일■이년 같이 일 한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 인데, 잠시 기다렸다 같이 가자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뭐, 그렇게 말한다고, 그게 그렇게 부장님 인사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도 돼?  ....너무 몸 사리는 거 같아.  진짜, 말만 부장이지....  진짜, 말만 부장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

“얘기하지마.  부장님 마음은 오죽 답답하겠냐?”

“그거 모르지?.  예전에 전체 망년회 했을 때, 그때도 전 직원 100여명 가운데, 은희랑 나만 빼고 회식 했쟎아.  몰랐어.   담날 카드전표 주는 거 보고 알았지.  처음엔 다들 우리 눈치보는가, 쉬쉬 하더니, 이사님이 먼저 말 꺼내니까, 다들 그 날 망년회 얘기하더라.  얼마나 어이가 없고 속이 상했는지.  그때는 부장님한테 얘기했어.  왜 그랬냐고..  답은 간단하더라고, 이사님이 시켰다고.  그게 다야.  이사님이 시켜서 그렇게 했대...  내가 부장이라도 그럴까?  정말 그럴까 싶어.  흥~ 말만 부장이지... 말만 부장이냐고 말하고 싶어”

“말 하지마.”

“하긴, 나도 몸 사려야지..   너무 비참해.”

“비참해?”

“.. 흠~ 더 비참한 건 뭔 줄 알아?”

“.......”

“사장님 라면 끓여 줄 때야.”

“그래?”

“일 바빠 죽겠는데, 라면 끓여 오라고 시키면, 정말 짜증나.  날은 더운데, 냄비에 물 담아서, 옥상까지 올라와서 라면 뽀개 넣을 때. 다 끓면 냄비 들고, 냄새 풍풍 풍기면서 사무실 거쳐 사장님실에다 라면 내려 놓고, 다 드시면, 물 드리고, 치우고...(실제로 난 예전에 한번, 식식거리며 라면을 끓이다가, 물이 팔팔 끓을 때 까지도 성질이 죽질 않아서, 끓는 물에 침을 퇘퇘 뱉고, 거기에다 라면을 끓여 드린적이 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후회가 되기도 하고, 조금은 미안했다.)”

“다 그런 거지.  회사생활이...”

“안 그런데도 있어.”

“맞아. 있어.  그러니까, 봐서, 더 좋은데 있으면, 옮겨.”

“알아.  알아봤어.  한 10여 군데?.  헌데, 결혼은 했지. 애는 없지 하니까, 써 주는데 없더라”

“맞아. 여자는 그게 좀 힘들어.  일 하고서 좀 있다가 임신하면 잠시 쉬니까, 고작 일해야 6~7개월 뿐 이니까.”

“오죽 못 났으면, 밥 한끼 못 얻어 먹나싶어.”

“그렇게 생각 하냐?”

“그렇게 생각해야지.  내가 못났으니까.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맘 편하쟎아.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거기까지 얘기하고 내려왔다.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엉망이었다.  퉁퉁 부은 얼굴, 흘러 내린 화장 얼룩.

사무실에 들어 와서, 부장은 공범이 돼서 미안했나, 처음엔 말을 시키지 않는가 싶더니, 이내, 이것 저것 일로 묻기 시작했다.  곁눈으로 부장얼굴이 보인다.  정면으로 보며 말하고 싶다. ‘말만 부장 아니예요?’.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 왔다, 내려 갔다 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래봐야 아무 직급도 없는 여사원이 뭘 어쩌겠냐는 듯이, 바로 앞에 앉아 심한 감기를 앓듯, 열이 잔뜩 오른 내 얼굴은 안중에도 없고, 일만 한다.  흥~~~  부장이, 답답하다고?  그런 말 할 수 없는 부장이 답답하다고???  병신. 정말 욱‘하는 성질에 말 할 기회가 생긴다면, 말 할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이사한테, 같이 가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길 원하는 건 아니다.  아님, 같이 먹겠다고, 남아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일로 이렇게 풀이 죽어 있는 날, 너무 힘들어 하지 말라고, 서운해 하지 말라고, 어쩔수 없었다는 핑계라도 섞인, 위로다.

빵을 사러갔던 직원이 왔다.  부시럭, 비닐 소리를 내며 들어오더니, 내 옆에 빵이 든 봉지를 내려 놓으며

“소영씨, 빵 드세요.”

"아니예요, 드세요.“

기분을 감추고 싶었지만, 고개까지 좌우로 흔들며 어쩔 수 없이 신경질 적인 말투가 되어버렸다.  흥~ 그 남 직원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 더운 여름에 빵 사러 갔다 오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은희가 사준 김밥과 컵라면을 사무실에서, 누가 들어 올까, 냄새 풍길까 마음 졸여가며, 뜨거운 라면 국물까지 후루룩 다 마셔서, 퇴근 할 때도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너무 울어서 일까, 눈도 시리고...  힘도 없다.  하루 이틀 있을 것도 아닌데, 그냥 말 말아야지 했지만,  하루 이틀 있을 것도 아니지만,  뼈 묻을 것도 아니니까... 문자라고 보낼까?  부장한테...  ‘니가 부장이냐?“.


모임이 있는 날 이다.  기분 같아서는 모임에도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갔다.  가서, 피곤해하고 밥도 먹지 안자,

“무슨 일 있어?”

“응~  나 오늘 점심도 못 먹었어.”

“왜~”

“알쟎아.  나 뗘 놓고 밥 먹으러 가서.  나 사무실 지키고...”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회사를 거쳐 나온, 거치고 있는 여 직원들의 모임이라, 이런 일은  다들 잘 알고 있는 얘기니까.  자리를 옮겨 술집으로 갔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아까 낮부터, 왼쪽 어깨부터, 팔 까지 심하게 저린다.

“수영 했는 데도, 않 풀려?”

“응. 오늘 잠은 다 잤다.  술 옴팡 먹고, 술 김에 자야지~~ 히히”

정말 술이 술술 넘어갔다.  웃으며 오늘 일을 다시 설명도 해 주고, ‘마셔, 마셔’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나 술 없어~’하며 연거푸 잔을 비웠다. 
화장실에 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술 집 안에도 사람이 없더니, 화장실에도 없었다.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고 일어나야 했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자꾸 얼굴만 일그러뜨린다.  화장실에 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눈물을 더 자극 시켰다.  처음엔 숨 죽여 울다가, 차츰 두 손이 얼굴을 감싸쥔다.  울음소리가 얼굴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이상한 굉음처럼 새어 나온다.  술이 빙글빙글 둔다.  온몸이 나른하고, 눈물이 흘러서 일까, 화장실 조명 불빛이 자꾸 눈으로 들어오는 거 같다.

“으이그,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  또 우냐?  하도 안 와서 토하는가 했는데...”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걸까?  변기에 물을 내리고, 세면대로 가서 손을 닦다, 얼굴을 닦는다.  친구가 나를 안아 준다.

“그만 울어.  너무 속상해 하지마.”

다시 또 눈물이 베어버린 얼굴을 하고 자리에 와 앉았다.  다들 내가 불쌍하다는 듯, 나를 위로하듯 한 마디씩 한다.

“맞아.  아줌마로 사회생활 하기는 처녀 적 보다, 더 힘들어.  아줌마들은 가슴도 없는 줄 알아.  그냥 아줌마니까, 이런 얘기해도 기분 하나 안 상할 줄 알고 그냥 막 말해.  그런데 아줌마 되니까, 마음이 더 여려 지더라.  나도 힘들 때 많아.  모델하우스에서 일 할 때도 도우미 아가씨들 한테는 잘 대해주고, 우린 아줌마라고 얼마나 뭐라고 하는데...”

“소영아!  울지마!.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여.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라니까.  너 그 사람들 미워하지마.  그러면 더 힘들어져.  그냥 이해해.  그 사람들 불쌍하다고 생각해.  그게 더 나아.  너 힘들면, 언니 일 하는 대로 와.  나랑 같이 영업하자.”

“그럴수록, 보란 듯 이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해야 되는 거야.  그런 일로 회사 그만 두쟎아? 그럼 ‘역시 여자는 결혼하고 아줌마 되면 별 수 없군.’한다니까.”

 

집에 왔더니, 오빠는 나를 마중 나가서 길이 엇갈렸나, 벗어놓은 구두는 있는데, 오빠는 없다.   씻고 자리에 누우니 오빠가 들어 왔다.  내가 쌩한 표정과 말투로

“왔어~?”

하니까,

“응~”

하더니 그냥 내 옆자리에 누워 자는지 더 이상 말이 없다.

며칠째, 내가 삐져서 오늘도 그러는 줄 아는지, 잠을 자는지.....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더 이상 부화가 치밀어,

“잘자...”

“...응.  잘자...“

....

“오빠는 나한테 관심도 없지?  내가 하루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지?”

“뭘~  도대체 왜 그러는데? 정말 요즘 이상하다~!?”

또 울었다.  이번엔 더 서럽게.  제발 따지지 말고,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길 바라면서, 차마 자존심 상해서 말하지 안으려 했었던 오늘 일들을.

“왜?  왜, 못 먹었는데?  사람들이 사무실 지키래?”

“응.  어떻게 그렇게 잘 알어?”

“.....흠~~~~~~~~~~ 회사 다니지마.”

결국, 다니느니, 어쩌니 하면서, 싸우듯 말 듯 하면서, 다시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잠이 들었다.


담날 아침엔 늦잠을 잤고, 어제 밤, 밥을 해 놓지 않아 편의점에서 사 들고 간 컵라면과 김밥을 회사에 와서, 강당에서 먹었다.  창 밖 너머로, 회사 야적장이 보인다.  저 멀리 앞을 가로 막는 산도 보이고.  날씨가 참 좋다.  어제보다 더 좋다.  산들 산들 바람이 분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날, 아침은 참, 열심히 청소 했다.  걸레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잿덜이를 비우고, 걸래질을 해 가면서 간간히 콧 노래도 불렀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제 나에게 해 준 얘기들대로 해 보이려는 듯,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지만, 그때 그런 건 남아 있는 술기운 때문일까?  마법이 풀린 듯, 다시 슬픔들이 밀려 온다.  지나간 일에 대해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부장과, 팀원 들.  그리고 이사.  나만 여자다.  다 남자다. 남 자.  차라리, 아직 계획에도 없는 임신이 실수로 되어서, 그걸 핑계로라도,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니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일은 잊고, 기분 풀고, 다시 또 그렇게 웃어 보여야 되...겠지?    

 

“여러분은, 점심 드셨어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