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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나도 한때는 자살을 꿈꾼적 있었다.


BY 박 라일락 2003-07-25


  코스모스 계절 따라 지고 있던 그 해 늦 가을..
  더는 그 사람을 붙잡지 못하여 돌아 올 수없는 황천길 보내고..
  참 많은 시련이 먹구름처럼 다가 왔다.

  어린 자식들과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고 
  수협 중매자격증을 인증받기 위해서 담보물 설정 땜에 얼마나 힘들었던가.
  2년을 넘는 그 사람 병원비로 달랑 집 한 체가 전 재산으로 남아있었지만
  미성년 자식들 땜에 법적으로 해당 안 된다면서 
  담보설정에 거절을 당하였고.

  하늘과 땅차이라고 할까..
  건물을 헤아릴 수없이 많이 보유하고 쭉쭉 빵빵 너무나 잘사시는 
  큰댁 아주버님에게 우리 아이들 미성년자격을 벗어 날 때까지 
  작은 건물 한 채 담보부탁을 드렸더니
  해줄듯 해줄듯 애만 달구면서 시간만 질질 끌다가 끝내 거부당하였고..
  영원히 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잠시 담보설정으로 빌려 달라고 했건만...
  결국엔 친정과 여고 친구의 도움으로  현금을 빌려서 
  수협에 담보하여 얻은 직장에 목숨 줄 걸었다.

  시련은 그 뿐이 아니고..
  일을 하면서 얼마되지 않아 나의 왼쪽 다리를 너무 크게 다쳤던 것이다. 
  그 전날 어판장에서 멸치 잡은 어선이 입항하였는데 
  현장 인부들이 청소를 깨끗이 하지 않아서 
  어판장 內가 억수로 미끄러웠던 것이 원인이 되어서... 
  입찰 응하려고 급하게 쫓아가던 내가 돌 뿌리에 채여서 
  엎어지면서 다리를 크게 다쳤고 곧 장 병원에 실려 갔었는데..
  왼쪽 무릎이 5cm넘게 금이 나서 부러지고 왼쪽 다리 전체를 깁스를 했던 사건이다.
  병원에 한 달을 입원하라고 의사가 간곡히 권했지만 
  그럴 수없는 나의 입장을 밝히고 의사에게 통원치료를 사정하였다.
  중매인 자격을 인준받고 이제 겨우 2개월째. 
  그 사람 보내면서 많은 공백기간이 있었는데 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그 당시 줄어진 고객들을 다시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었던가. 
  그런데 또다시 한 달을 병원에서 보내어 자리를 비운다면 뻔할 뻔자 아닌가..
  '아니야. 그건 절대 그럴 수 없어.
  나의 業을 이렇게 쫑 칠 수 없잖아. 
  이젠 죽어도 밥줄인 어판장에서 죽어야 하는 거..
  나만 바라보는 우리 식구 모두를 누가 책임을 저 줄 것인가...? '
  깁스한 다리를 찔찔 끌면서 긴 50일간을 너무 힘들게 일을 하는데..

  엎친 위에 또 덮친다고 했던가. 
  아직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큰댁이 소유한 많은 건물 중에 시내 중심가 삼덕동 큰 기와집. 
  그 당시 천 백만 원 전세로 우리 아이들이 3년 넘게 있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시숙님 회사 계실 때
  (지금은 부도가 났지만 그 당시 재벌인 D건설의 이사로 있었음)
  빌딩을 새워야 한다고 추운 한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겨울이 들어서는 문턱인 11월에 빌딩을 지어 올린다는 이유로..
  아마 건물 지으려는 봄날까지 우리가 집을 비우지 않을까 봐 
  한수 더 떠는 큰댁의 심보가 야속하기만 하였으니.. 

  그 날 그 전화를 받는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이성을 망각하였고 한마디로 미쳐 버렸다. 
  담보설정 건으로 큰댁과 나의 감정은 
  벌써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한 한 마리의 생선이 되어 있었기에 
  과연 좋은 소리가 이 뇨자 입에서 나올 리 없었고. 
  최후의 발악으로 큰 댁 형님에게 내 마지막 울분과 한을 풀어 제쳤지.
  "형님. 뭐라고요?
  이 추운 엄동 설한을 앞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요? 
  그 자리에 빌딩을 한 겨울 추운 지금에 꼭 지어 올려야 한답디까? 
  지네 아버지 죽은지 2달 밖에 안된 당신들의 친 조카자식 들입니다. 
  큰아버지 큰 엄마로써 이렇게 잔인하게 갸들을 대할 수 있어요? 
  우리가 형님 댁에 영원히 눌러 앉을까 봐 억수로 겁나는 모양인데 
  하지만 그 건 아주버님과 형님이 큰 착각하고 있는 거랍니다. 
  오늘 살다가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뇨자 살아 생전 
  큰댁에 아이들 쪽박 채워서 동냥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곤란하네요. 
  형님이 전세금조로 우리 돈 가지고 있는 천 백만 원으로
  울 아이들에게 주고 길거리로 내몰던지 삯을 셋 방을 얻어서 내보던지 말던지.., 
  우리 아이들 당신네 집안의 朴씨성을 가졌으니 그도 저도 안 되거들랑 
  어느 고아원에 데리고 가서 넣어 버리던지 뜻대로 하세요' 
  (결국 다른 곳으로 우리 아이들은 이사를 하였고 
  겨울 내내 큰댁은 비워 있더니 그 다음 5월에 5층 빌딩 착공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울분을 토하던 그 날 밤. 
  깁스를 풀지 못한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바다가 바로 앞인 내 집 앞 부두에서 
  삶에 지친 내 인생 두고 처음으로 자살을 꿈꾸었다. 
  정말 그 냥 말없이 죽고 싶어서.... 
  어린 철부지 자식 땜이라고 할까..
  아님, 
  모진 생명 줄에 매달린 끈질긴 연줄 때문인지...
  끝내 죽음을 택하지는 못했지만.


  엊그제 접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
  셋 자녀를 앞 세우고 동반 자살한 그녀..
  그 엄마의 입장을 두고 두고 생각게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