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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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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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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BY 새봄 2003-07-23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이 내 등줄기를 타고 스멸스멸 기어간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외박은 절대 금물이고 몇박며칠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게 했던 나였는데
이번엔 그냥 편하게 잘 갔다 오라고 훌훌 보내주었다.

비가 며칠째 내린다.
이 비가 며칠을 더 내릴지 나도 딸아이도 모른다.
이런 사실을 애국가 가사에 계신 하느님도 모르고
성경에 써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도 모르고
산사에 근엄하게 앉아 계신 부처님도 모르고
깔끔하신 신부님도 절대 모르신다.

"이힝~~~비가 계속오면 어쩌지......엄마?"
"그러게 하필이면 오늘 날을 잡았니?"
"비야~~제발 그만와라."
"며칠동안 계속 오거라"
"엄만......"
딸아이가 커다란 눈을 뱁새눈처럼 만들어 가지고

날 향해 흘기며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떠났다.

딸아이가 태어나던 그 해도
딸아이가 재롱을 부리던 때도
딸아이가 학생이 되던 날도
딸아이가 사춘기를 보내는 이 시기에도
난 뭐 하나 잘해준 게 없다.

애기때는 남편의 도박으로 인해 허구헌날 싸웠고
유치원 때는 우울증에 걸려 맨날 누워 있었고
초등학교 때는 갑자기 비가 와도 우산 한번 가지고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온 몸과 마음이 한창 반항할 시기인 사춘기때는
모든 걸 끝낼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딸아이는 날 원망하며 반항을 했다.
나중에 커서 엄마를 이해할 날이 올거라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었다.

딸아이는
밥 먹으란 말만해도 짜증을 냈고
진드기처럼 컴에만 찰싹 붙어서 떨어 질 줄 모르더니
작년부터 돈 벌겠다며 방학때는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삐딱하게 세상을 접하는 시기였고
사랑도 지랄같고, 가정이고 나발이고 개떡같은 하루였다.
자식이고 뭐고 다 내 짐이고, 다 그 놈 탓이라고 원망을 했고......

내 모성애는 친정 엄마를 닮았을거다.
책임과 의무감과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두 아이를 겨드랑이에 끼고서
아이들과 같이 울며 밤새도록 한숨을 쉬던 많은 날들......

세월이 약이라는 통속적인 말이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는 멋드러진 위로의 말도 많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죽음밖에 없다는 결론도
지나고 나면 벌거 아닌 과거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이런 시도 시방에서 많이 봤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올 봄에 나는 작은 매장을 시작하고 화장실가서 진득히 앉아 있을새도 없이 바쁘게 살 때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 나...... 교내 백일장에서 은상 받았어요."
"그래? 그래그래......넌 글을 잘 써.잘했다.정말......"

작년에 딸아이는 잘 하던 공부도 안하고
그림을 그릴때가 제일 행복하다던 미술학원도 안다니면서 내 속을 쩍쩍 갈라지게 했다.
"그럼 너 뭐 할거니?"
"하고 싶은 거 없어."
"그래......그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라."
내버려 두었다.
지도 얼마나 힘들거란 안타까움보다는
내 신경이 헤까닥 돌아 미친여자가 되어 뛰쳐나갈 것 같아서였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란 노래를 시제이에게 신청하고선
나도 컴 진드기가 되어 내 속에 있는 서러움을 새벽이 지날때까지 글만 썼다.

딸아이는 상장을 내 눈앞에 드밀었다.
작년에 미술상을 타오고 오랜만에 보는 하얗게 눈시린 상장이였다.
딸아이가 쓴 글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아빠에 관할 걸 아주 덤덤하게 쓴 수필이였다.
몇장 안되는 글을 한참만에 읽었다.
'가슴이 왜 이리 막히나......
목구멍이 왜 이리 아프나......
머리가 왜 이리 복잡 다양하냐......'

"김 가지고 가라.라면도 넣어라.과자도 가지고 가야지?"

"사먹지 말고 될 수 있는대로 해 먹어라"
내가 생각해도 난 잔소리가 많다.
"남자들이 놀자고 해도 놀지 말어.두 밤 자지 말고 한 밤만 자고 오지."

"나가봐라 집이 좋을 걸?"
내가 생각해도 난 친정엄마랑 닮아간다.

딸아이는 외삼촌이 신던 큰 슬리퍼를 신고 친구에게 여행가방을 빌려서
염색약을 사다가 직접 염색한 머리를 찰랑 흔들며 한번 씨익 웃으며 뒤돌아 여행을 떠났다.

'저 놈의 기집애 엉덩이 좀 봐라.다리통이 내 다리보다 굵네.'

'하느님,하나님,부처님,신부님......비 좀 고만 뿌리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