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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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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BY 소나기 2003-07-07

솨아- 쏴아

빗줄기 창살에 갇힌지도 꽤 여러 날이다.

연신 보일러를 가동했는데도 온 집안은 끈끈한 기운이 가득하다.

이제는 삐꼼히 해님의 얼굴이 먹장 구름을 밀칠 때도 됐는데 여전히 빗줄기는 굳은 철장 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새삼 파아란 하늘 아래 햇살로 보송해진 빨래들의 물결이 그립다.

 " 아, 지루한 장마, 언제나 끝나려나."

 긴 하품처럼 지루함을 토해내며 창밖 너머의 텃밭을 바라보니 이런 나의 마음과는 달리 텃밭의 호박,오이,가지,고추 등은 한없이 줄기를 뻗어 담을 기어오르고 있다.거기에다 널찍한 이파리들은 통통통 빗방울 연주로 그 싱싱함을 맘껏 과시함을 넘어 오이, 호박을 살포시 감싸 안고 있다.

 참으로 요란함 속의 평화다.  

"뻐국---"

빗줄기 소나타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뻐꾸기 시계가 11시를 알리며 내 시야의 평화를 깨뜨림에 다시금 돌아온 일상.

어느 새 남편의 점심 시간이 다가왔음을 상기시켜준다.

남편의 근무지는 조그만 섬 학교라 급식을 하지 않는다.그 때문에  점심까지 챙겨야  하는데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평소 라면을 즐기는 남편이라 곧잘 라면을 요구하는 편도 있지만 정성을 다해 맛을 넘어 색깔까지 신경 쓴  점심을 달게 먹는 걸 보면 힘듬을 넘어 뿌듯하다.

"오늘은 무얼 하지? 비빔밥, 라면, 오무라이스...."

 이런 저런 음식을 떠올려 보다 비 오는 날에는 시원한 국물이 제격인 수제비나, 칼국수가 제격일 것 같아 칼국수로 결정을 보고 칼국수 끓이기에 돌입.

 냄비에 물을 붓고 조선 간장을 아주 조금 부은 뒤 멸치를 넣고 육수를 만드는 동안 밀가루 반죽을 하였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 둘둘 만뒤 한석봉 엄마보다 더한 솜씨로 칼국수를 만들어 놓은 뒤 미리 마련한 멸치 육수에 감자 조개를 넣고 한소끔을 끓였다. 시원한 조개와 감자 국물 냄새가 코끝을으로 풍겨와 장마의 지루함이 싹 가신다.

 주무르고, 밀고, 깎고, 썰고, 끓이고....

 어느 새 12시. 남편이 도착할 시간

 약간 설레이는 마음으로 막바지 단계인 칼국수만 넣지 않고 상을 본다. 김치, 양념장, 나물 몇가지와 수저까지 챙긴 뒤 조르르 앞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지만 남편의 차는 보이지 않는다.

"따르릉-."

예고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려가 받아보니 라면 끓여 놓으라는 남편의 목소리.

"어, 칼국수 끓여 놓았는데..."

 칼국수라는 말에 허허 웃으며 알았다는 남편의 목소리.

빙고! 비 올 때는 칼국수를 따를 요리가 어디있겠는가.

막바지 단계인 칼국수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고 있을 즈음 들어선 남편,

아, 그런데 내 빙고는 여지없이 어긋나고....

" 라면 끓여. 난 칼국수 별로 안 좋아 하잖아. 혼자 다 먹어."

전화 목소리완 사뭇 다른 쌀쌀한 어조. 학교에선 체면 치례로 너털웃음 지었나? 잠시 혼돈으로 현기증이 일었지만 용기내어 나혼자 다 먹기엔 많다는 말에 옆집 갖다 주면 되지 않느냐란다.

순간 빗줄기 같은 눈물이 가슴을 차 올라 목이 메인다.

냄비에 물을 얹어 놓고 칼국수를 두 그릇 떠 고명까지 얹어 옆 집에 갖다 주는데 빗소리는 왜그리 큰지...

 "어머, 비오는 날에는 칼국수가 제격인데. 참 부지런도 하셔."

속도 모르는 이웃 아줌마의 호들갑,

글쎄 말이유. 라면, 만두, 비빔 국수,빵도 밀가루 음식인데 왜우리 네로 황제는 이 시원한 칼국수와 수제비는 싫다는 건지원.

라면을 끓여 안방에 넣어주고 식탁에 앉아 남은 칼국수를 후루룩후루룩 넘기자니 장대비가 가슴을 무너뜨린다.

'아, 지루한 장마, 언제나 끝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