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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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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 빤스..


BY 올리브 2003-07-06

하루종일 잠을 자도 만족스럽지 않은 밤근무 마지막 날...

잠이 중요하냐.. 날 기다려주는 우리 병동 식구들이 중요하냐..

갈등하다 그래도 내가 있어야 재밌다는 하하녀들의 유혹땜에 결국

회식에 참석하기로 맘 먹고 누웠더니 가물가물 졸리긴 한데 도무지

깊은 잠을 잘수가 없었다..

 

내가 괜히 빼뺀가.. 이러니깐 살이 안 붙어 있어준다니깐..

 

결국 깜박 졸다가 눈 떠보니 시간이 많이 달아나 있었다..

서둘렀다..

아무리 이따가 밤근무 하러 간다고 해도 날 위한 먹거리와 흔들대는 음악이

있다는데 몸단장은 필수요 선택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담스러운 깐깐한 저녁시간 이었지만 난 그날도 과감히

짧은 치마와 내 스스로에게도 반한 만족스런 부츠를 신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잠시 룸미러로 화장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까지 마치자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 

출발부터 시작된 내 조급함이 방해하는걸 알지 못했다..

그러다 신호가 바뀐걸 아차 놓치고 말았다..

 

서야 했나?

할수 없지.. 좀 늦었는데..

 

아... 근데 저기서 너무도 낯익은 모양새의 청년이 무어라 손짓을 해대며

난리다.. 난 내가 아닌척 모른척 좀 더 달리다 끄억대며 쫓아오는 청년땜에

결국 오른쪽 발에 힘주어 차를 세웠다..

 

'' 신호 위반입니다.. 아시죠? 아까부터 서라고 했는데 왜 지금에야 서는

겁니까? 면허증 주십시요..''

 

'' 아.. 난 내가 아닌줄 알고.. 알았다구요.. 여기..''

 

그런데 면허증이 보이질 않는다.. 이거 잘된일 인가 ? 아님 ...

 

'' 저요 .. 거짓말이 아니라.. 지금 면허증이 없네요..''

 

그리고 보란듯이 핸드백 아래 위를 털어내고 나도 그때까지도 면허증이

분실된것을 몰랐던터라 당황해서 수선떨기에 바빴다..

 

'' 그리고요.. 저 저쪽 병원 간호산데.. 거기서 지금 call 이 와서 지금 급하게

가다가 그랬거든요.. 여기 이 회원증은 있으니깐 이거 한번 보세요..''

 

진지하게 들여다 본 그 믿음직한 청년은 날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 그럼 .. 절 저기까지 태워다 주시구요 .. 어차피 가던길이죠? 내가 일하는

곳에 괜찮은 선배님이 있는데 소개팅 한번 하세요.. 그럴순 있죠? ''

 

애고.. 참 .. 치사 빤스네.. 그냥 가라고 하면 되지.. 뭐라고? 소개팅?

경찰이랑? 알았다구...

 

'' 삐삐번호 하나 적어주세요.. 내가 이 차 번호 아니깐 제대로 적으세요..''

 

알았다구.. 뭐 한번 만나보지..

 

겨우 청년을 내려놓고 회식장소에 부랴부랴 달려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배도 고팠고 아까의 아찔한 순간땜에 잠시 정리가 필요했다..

 

잘한짓 인가?

 

그리고 마지막 밤근무를 시작했고 며칠후 그 삐삐가 울려댔다..

그것도 아침 인계시간에.. 진동도 아니구.. 蛾蔥?삐삐소리땜에 잠깐

화들짝 놀랐다..

 

그 청년한테 연락이 왔었는데 미리 시간 장소까지 다 만들어서 나한테

통보하고 있었다..

 

잘났어.. 암튼 내가 한 약속이니깐.. 알았다구..

 

이름 석자가 전부인 정보땜에 은근히 걱정이 됐는데 너무도 쉽고 익숙한

몸짓으로 그 경찰이라는 남잔 내게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 이름을 불러대길래 올려다 봤더니 내게 첨으로 눈에 들어온 형체는

짤막한 다리땜에 더 짤막하게 보이는 짤막한 바지단이었다..

 

날 보더니 씩 한번 웃어보이며 배 고프다고 나가자고 하길래 나도 뭐든 먹긴

먹어야 하는데 이 경찰은 내게 입맛을 잃게 해줬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내게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 막힌 상상까지 하고

돌아선 내가 한심하고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찰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고 아니 날 면제해준 그 청년에 대한 깔끔한

마무리를 해주고 싶어서 맥주까지 나눠 마시고 신기해하는 병원 간호사들의

에피소드까지 쏟아서 내 보이면서 엄청 나름대로 친절한 간호사라는걸 의식시켜

줬다..

 

문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부터 시작됐다..

 

'' 접니다.. 우리 이거 인연 같은데 낼 또 만나죠.. 전 솔직히 맘에 듭니다..'

 

애고.. 애고..

 

이거 .. 무슨 빚보증 잘못 선것도 아니고 미치겠다..

난.. 이 남자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냐구..

 

'' 저 .. 낼은 근무땜에 시간이 없구요.. 내가 연락할께요..''

 

겨우겨우 빠져나오니깐 이번엔 그 청년한테 메세지가 왔다..

 

'' 울 선배님 진짜 남자답죠? 내가 젤 좋아하는 선밴데 ... 근데 차안에선

몰랐는데 키가 크다고 하네요.. 차안에선 작게 보였었는데.. 울 선배님이

키가 좀 작아서 소개해준건데.. 키가 많이 크신가봐요? ''

 

내가 키가 많이 큰게 아니라 그 경찰이 키가 많이 작은거라구요..

 

그 후로 근무중에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삐삐소리땜에 난 그 청년을

다시 만났고 날 보고 막 웃더니 그 청년 하는말

 

'' 아.. 이제보니깐 나랑 만나야 따악 폼이 났을텐데.. 그럼 나랑 한번 .. ''

 

야... 이 남자들 정신 차리라구..

 

내가 그때 그냥 정정당당하게 고지서 빼달라고 할것을 .. 이게 뭔 고생이냐..

 

난 저런 남자들 내 지구의 반을 다 준다고 매달려도 싫다구..

 

짤딱만한 다리. 짤딱만한 바지단땜이 아니라 줏대없는 남자들의 말땜에 난

일주일 내내 그들의 속박에서 빠져나오느라 쩔쩔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