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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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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줄께...


BY 올리브 2003-07-02

여자가 긴 치마 걷어올리더니 한강물로 걸어들어가는게 보였다.. 근데 남자가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어딘가 있을것 같은데..

 

'' 죽어줄께..''

 

여자가 방금전 독백처럼 중얼거릴때도 분명 남잔 있었는데...

 

그리고 그날의 드라마 분량은 끝이났고 담 날까지 그 여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 죽어줄께..''

 

내 앞에서 헉헉대며 죽어가는 사람처럼 중얼거렸었던 남자가 생각나서 갑자기 맘

한구석이 아파왔다...

그리고 그 남자가 너무도 오래 버틴게 미안한것처럼 죽어버렸다..

 

날 위해 죽은건 아닌데 내가 그 남자땜에 아픈건 아닌데 결국은 죽어버렸다..

 

'' 죽어줄께''

 

'' 죽었어...''

 

해줄말은 없었다.. 그냥 그 독백처럼 작게 울려퍼지는 대사가 작아져버린 내 빈 가슴

속에서 헤어나지 않고 있었다..

 

 

오후근무가 끝나고 버스를 두번씩이나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땜에 더 지쳐갈무렵

앞으로 집에까지 가려면 세정거장을 가야하기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벌써 버스가 끊긴건지 아님 내가 운이 없었던건지 30분이 지나도 버스는 보이질

않았고 남은방법은 택시를 타야했는데 택시도 내 편이 되어주질 않았다..

 

몇정거장 가기위해 택시는 한사코 승차거부를 했고 난 막 짜증나기 직전이었다..

 

병원에서의 그날 있었던 온갖 스트레스땜에 먹지도 못하고 근무를 한 후유증이

막 밀려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 앞에서 핑 돌더니 비틀거리는데 한 남자가 내 팔을 잡아줬다..

 

'' 택시 안 잡히죠? 집 멀어요? 한 두번 더 잡아보고 안되면 우리 걸어갈래요? ''

 

뭐라고 해야 하는데 그 난감한 어지럼증땜에 결국 주저앉아서 겨우 그 남잘 쳐다봤다..

 

'' 지금 몇신데요? ''

 

'' 많이 늦었네... ''

 

그러다 걸었다.. 남잔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까부터 삐쩍마른 여자가 이리저리 팔

휘저어대며 택시 잡는게 불안해 보여서 자꾸 쳐다봤댄다..

 

그냥 듣기만 했다.. 생각보단 같이 걸어서 그런지 오래걸리지 않아서 도착했고

난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 남자가 내 팔을 다시 붙들었다..

 

'' 나 .. oo 학교 학생인데 .. 방학이라 잠깐 여기 놀러왔거든요.. 학생 이예요? ''

 

난 막 대학을 졸업한 신참 간호사라는 말을 해줬고 언제 병원에 올 일 있으면 그땐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그 남자를 떨구어냈다..  너무도 힘들어서

쓰러지기 직전이라 더 이상의 친절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후 아침근무가 끝나고 막 문을 나설때였다..

 

'' 저기.. 간호사님..''

 

병원에 간호사가 한 두명도 아니고 그때까지도 난 그 남자가 거기서 웃으며 서 있는걸

보지 못했고 동료간호사와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는라 배가 고팠던지라 뭔가를 먹기위한

재촉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 저기.. 저기.. 빼빼 간호사님..''

 

그제서야 옆에있던 간호사가 내 옆구리를 찔러대며 날 불렀다..

 

내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함박웃음으로 웃고 있는 이 남잔 아이스크림 한다발을

들고 있었다.. 마치 꽃다발을 들고 있는것처럼...

 

'' 아... 안녕하세요? 근데 나 근무인거 어떻게 알았어요? 아닐수도 있었는데..''

 

'' 다 알수가 있죠.. 덥죠? 우선 이거 하나씩 먹고..''

 

궁금증으로 일그러진 내 동료 간호사와 내게 하나씩 건네주며 또 웃기 시작했다..

 

그후 이 남잔 방학이 끝나갈때까지 가끔씩 날 찾았고 난 친구처럼 가끔씩 병원얘기도

하며 맘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에 좀 부담스러웠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만나면 유쾌한 그 무엇이 그 남자에게 있었지만 돌아서면 항상 어둡게 깔려있는 남자의

방황이 뭔지 난 알려고 하지 않았고 이 남자도 얘기하지 않았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또 그 남자가 내게 아무런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병원생활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왔을때도 난 남자가 또 방황하는줄 알았다..

 

남잔 내가 잘 아는 병원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는걸 내 친구 간호사를 통해서

알았고 난 내 맘속에 그 남자가 있어주지 못해서였는지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들었고 내게 그 남잔 아무것도 남아있는게 없었다..

 

잊혀질 뭐라도 없었지만 가끔씩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온다는 친구안부를 대신

들어주면서 난 어느정도 병원생활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

 

'' 죽어줄께..''

 

그 말이 전부였던 대사가 생각날 정도로 아찔한 소식에 잠깐 멍청해졌다..그 남잔  

그렇게 남자가 원했던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남잔

 

'' 죽었어..''

 

이상한건 없었다.. 다만 그 남자가 왜 그래야 했는지 그 남자밖에 알순 없지만 그 남자의

방황이 뭔지 조금만 알았다면 그 남자가 이 하늘아래 살아서 내려다 봐야하는 아픔은

겪지 않았을텐데.. 하는 망각을 해봤다..

 

그게 뭐 였을까..

그 궁금증땜에 잠깐 맘 구석진 빈공간이 생각나 쓸쓸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