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기온이 뚝 떨어져서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피부에 쌀쌀한 기분이 느껴진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은 했지만 기온이 한자리 가까이
내려가니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고 겨울이 느껴진다.
나는 체질상 추위를 많이 타서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이 좋다. 그래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내복을
입지 않고는 못견딘다. 그러나 더위는 웬만하면
다 참아낸다. 한마디로 '여름사나이'다.
오늘은 입지 않던 양복과 긴 와이셔츠를 입고 목에
댕기를 매고 출근을 했다. 한 동안 입지 않아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밖에 나오니 추운 기운이 들지
않아서 기분이 좋다. 넥타이를 매면서 거울을 보니
잘 생긴(?) 모습에 양복을 입으니 더 잘생긴 것도
같다.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여보, 조심해요!"
"뭘, 조심해?"
"차하고 여자 조심하라고요!"
"차야 조심하면 되지만, 여자는 내 마음대로 되나 뭘!"
"출근해서 눈길 주지말고, 퇴근할 때는 따라오지 못하게
집으로 곧장 오면 돼요."
"알았어, 염려 팍 놓으시라고. 애들 작은 엄마 안만들테니."
나는 아이들 둘-딸, 아들-과 같이 집을 나선다. 아침 출근길에
애들 둘을 학교까지 태워다 준다. 다행이 방향이 같아서 아들을
먼저 내려주고 딸을 내려주고 나서 직장으로 가면 된다.
출근하다 보면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을 냄새를 확 풍긴다.
이제는 흰 옷은 눈에 많이 띄지 않고 은은한 낙엽 색깔이나
검정색 옷을 많이 입었다. 학생들도 춘추복으로 갈아 입어서
한결 예뻐 보인다. 물론 하복은 하복대로 시원하고 발랄하지만
또 긴 소매의 부라우스에 쪼끼를 받쳐 입으니 더 귀여운 모습이다.
베이지 색의 옷을 입고 니트를 걸친 여성이 밝은 모습으로 지나길래
"저 아가씨 예쁜 옷을 입었는데!" 하고 말하니 딸애가 "아빠,
아침에 엄마가 말한 주의사항을 금방 잊어버렸네!"라고 말한다.
"주의 사항이 뭔데?"라고 되물으니 "운전조심, 여자조심!" 그런다.
나는 속으로 뜨끔하여 "어, 옷이 예쁘다고!"하며 얼버무리면서
속으로는 "야, 이제는 딸까지 감시를 하니 참, 완전히 구속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외가에 갔다 올 때면 다리가
아퍼서 못 걷겠다고 버텨서 내가 등에 업고 집에 왔는데 벌써
커가지고 같은 여자라고 엄마편을 들고 있다니... 업어키운 아빠의
은혜도 모르고서.
그런데 아들은 누나 옆에 같이 앉아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성격이 유순하고 여러서 내가 누나보다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래도 아빠가 채팅을 하고 나서 외출을 하면 저의 엄마한테
"아빠 누구 만나러 갔느냐?"고 묻고 염려를 했다고 한다. 속으로는
아빠를 뺏길가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나보다. 물론 채팅으로 만나
지도 않았고 지금은 하지도 않는다.
저녁 때 퇴근을 하니 마누라의 취조가 시작된다.
"당신, 오늘 다른 여자한테 눈길, 마음 다 줬다면서요?"
"누가 그래? 나는 여자 보길 돌 같이 본다구."
"거짓말 하지 말아요. 안봐도 다 알아요."
그래도 딸한테 들었다고는 하지 않는다. 요 딸녀(ㄴ)이 이제는
컸다고 아빠한테는 엄마 말 하고 엄마한테는 아빠 말을 해서
양쪽에서 점수를 따고 있다. 한 번은 출근하는데 "아빠, 엄마가
아빠 지갑에서 내 용돈 꺼내 줬다."하고 말하면서 "이 말 내가
했다고 하지 말고 돈을 세어 보니 돈이 비더라고 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퇴근해서 넘겨집고 추궁을 해서 받아낸 적이 있다.
저의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입덧을 해서 뭘 못 먹고 애를
낳다. 태어났을 때 너무 작아서 염려했었는데 이제는 많이 컸다.
올해 수능 준비를 하느라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 제 능력만큼 사는 거겠지 하고 별로 많이 요구를 하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가족이 모여 포도를 먹으면서 "야, 너 엄마한테
아빠가 오늘 아침 길가는 아가씨 예쁘다고 했다고 일렀지?"하고
물으니 "내가 일렀으면 아빠 딸이 아니예요!"하고 발뺌을 한다.
그러니 어쩌랴. 원래 가재는 게편이라고 했던가! 우리 딸도
벌써부터 엄마한테 아내수업을 받고 있는 것을.
아, 귀여운 우리 딸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