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년시절
고등학교 다닐 즈음이었나?
언니 책장에 꽂혀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 제목을 보고는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모르면서 인쇄된 활자를 줄기차게 읽어 댄 적이 있었다
활자에 중독된 아이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진 많은 세월이 필요했지만 말야]
[?] 꾸리리 -_-''''''''''''''''''''''''
사춘기의 절정을 이루는 그때
~유난히∵
키에르케고르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던 내게
손바닥만한 문고판의 낡은 책은 제목 자체만으로도
나의 염세주의적 심상을 훌라닥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소녀들은 굴러가는 낙옆만 봐도 키들거린다는데 ...
그 시절 나의 생각속에 꿈틀거리던 모든 연민들은 [지금은 생각도 잘 나지 않지만]
나만의 카테고리속에서 덜 여문 에고[ego]와 함께 멋드러지게 포장된
사춘기의 양파같은 철학이었다^*^~
히히ˇ-ˇ
[아마도 이런 자신의 모습이 딴에는 멋있다고 생각했던가벼]
이렇게 ego는 나의 사춘기를 살더니 청년의 세월을 타고
어느새 [개인주의자]란 텍을 달고 사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스므살이 훨씬 넘도록 말야]
그래도 과히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는 충분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이 두 낱말이 주는 의미의 분명한 차이를 나름대로 씨부리며 돌아 다녔던 터라
나의 주장 뒤에 오는 사람들의 반응에는 상관없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 [남에게 해를 끼쳐가며 내 옳음만 주장하는 행위는
이기주의자가 하는 짓이지만]
-- [남에게 해를 주지도 않으면서 내 것을 잘 챙기는 행위는
개인주의자의 정당한 행위라고]
그때부터 나의 삶속에 줄기차게 좇아다니는
[개인주의]에 대한 나의 편견은 질긴 삼줄기처럼
아이엄마가 되고 그아이들이 커가는 동안도 계속 되었다.
-- 아구 무서버 >-<'
--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고]라는 식이지
그래서인가?
난 칭찬에 인색하고 배려하는 것에 어색해하고
네것에 손안대고 내것에 손대는 것을 거부하는 관념이
내 생활의 이념이 되어 버렸다
늘 내 마음의 잣대로 상대방을 겨냥하고 판단하는 내 편견들은
생활속에 접목되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돈키호테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은 돈키호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객관적임과 주관적임이란 낱말의 해석의 차이를 두고
유별나게 분리시키려 했던 청년시절의 내 관념들은
나의 판단의 척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들이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도 주긴하였지만
이웃과 쉽사리 섞이지 못하는 외골수의 성격을 얻게 되어고
때론 혼자라는 외로움속에서 [미운오리새끼]처럼 살고 있지 않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인생 팔십의 반생을 넘어오면서
[합리적]인 것에 눈을 뜨고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니
얼마나 좋고 편한 것인지 ~ 이젠 알 것 같았다
사회는 혼자서 이뤄낼 수 없는 개인개인의 생활이 얽혀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와 합하여 선을 이루어 내는 삶을 살때에야
비로서 행복을 낚을 수 있을 거라고.
물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는
고도의 합리성을 갖추어야 하지만
각자 생활도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합리주의적인 생활을 꾸려 나갈 때
우리의 마음도[합리성]이란 필수아미노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