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어머니가 옆에서 하시는 말씀을 그냥 흘려 들었다.
아이들 방문 옆에 작은 철망 바구니에 꽂아둔 종이장미를 보시면서
그러셨다.
''먼지가 많이 앉았네. 이것을 ''퐁퐁''조금 넣고 씻으면 깨끗해 지는데...''
수도꼭지에서 물흐는 소리를 들으며 부지런을 떨고 있는 내 귀에
어머니의 그런 두런거림은 그냥 종이장미에 먼지가 좀 앉았구나
하는, 어머니의 생각 그 이상으로 들리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잊고 있었다.
종종거리며 반찬을 준비하고
식탁을 차려서 아침을 먹었다.
늦게 먹으려는 아이들을 재촉해 가며 밥을 먹고,
학교갈 준비를 하느라 난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현관을 빠져 나가자 마자
화장실에서 짧은 탄식이 들려 왔다.
''아이고, 이걸 어째. 플라스틱 조화 인줄 알았는데 종이로 만든 꽃이었네.''
화장실에서 기어이 종이장미를 물에 담궈 ''퐁퐁''까지 듬뿍 발라서
씻고 계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화들짝 나를 깨우는 것이었다.
''어머니 그걸 물에 씻으면 어떻게 해요?''하면서
들여다 보니 이왕 물속에 들어간 종이꽃은 그 종이색깔대로,
노랑과 분홍과 빨강색이 물어 풀려 나오다가 결국은 검푸르게 변하가고 있었다.
이왕에 손을 볼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몰골이 되어버린 종이장미.
난 속이 상한 나머지 어머니 생각을 하지 못한채 털석 주저 앉고 말았다.
그건 2년전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적에 내가 직접 만든 꽃이었다.
생전 손으로 오밀조밀 뭘 해내는 적이 없는 내가 갑자기
문구점엘 들렸다가 한번 해보자며 종이장미 재료를 사게 되었었다.
접는 방법이 상세히 적혀 있어서 그대로 따라 하니 생각보다 훨씬
예쁜 장미꽃이 완성되었었다.
노란장미 한송이 분홍 장미 한송이 그리고 빨간장미가 다섯송이..
그렇게 한묶음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중 가장 나로 하여금 접는 기쁨을 알게 하던 노랑장미는
한묶음 속에 한송이만 들어 있어서 아쉬웠었다.
노란장미를 더 접고 싶어서, 생각보다 종이장미가 예뻐서
일부러 문구점엘 들러 대여섯 묶음을 더 사왔다.
그때가 마침 스승의 날 즈음이었고, 유치원에서는 선물은 일체사절하니
아무것도 가져 오지 말라는 안내문을 받을 터였느니
내가 직접 접은 종이장미를 아이손에 들려 보내
그 작은 정성으로 선생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던것 같다.
선생님께 보낼 장미는 특별히 더 정성을 기울여 꽃을 만들었다.
색깔을 골고루 섞여 열송이 정도의 종이장미를
팬시점에서 산 예쁜 유리병에 꽂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예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건넨 유리병에 꽂은 종이장미는
아이유치원 반 한켠에 놓여져 유치원을 화사하게 해주었노라
선생님이 말해 주었었다.
종이장미를 접어 거실 한쪽을 장식해 둔후,
우리집을 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색깔은 화사하나 어딘지
순박한 느낌이 드는(감출수 없는 서투른 솜씨 탓) 장미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는
했다. ''조화가 참 예쁘네요, 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직접 접은 거예요''하면 꽃집에서 파는 조화인줄 알았다며 너무 이쁘다고
칭찬들을 해주시곤 했었다.
사실,할인마트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조화을 많이 볼수가 있다.
장미서 부터 백합 해바라기, 들국화, 그리고 이름을 알수 없는 작은 꽃잎을 가진
섬세한 느낌의 꽃까지... 저런것들을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 만들수 있을까 싶은
조화가 아예 진열대 한쪽을 다 차지 하고 있을 정도로 조화는 쉽게 구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든꽃, 그것도 생전처음으로 내가 만든꽃을
보면 작은 행복을 느끼기도 했으니 내게 있어 거실한켠에서
우리 집을 화사하게 꾸며주는 종이장미는 ''그냥 조화''몇송이의 의미 그 이상었다.
그랬으니 이사를 했을 때도 당연히 종이장미를 먼저 챙겼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먼지가 켜켜히 앉아가고 색깔도 조금씩
엷어져 갔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손질해 가며 난 종이장미를 버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었다.
그걸 어머닌 오늘아침에 물에 불리고야 만것이었다.
어머님은 그냥 깨끗하게
하실려고 한 무의식적으로 한 일이지만,
나한테 한번만 물어보고 하실일이지.. 난 정말 아쉬워서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본전도 못찾고 말았다.
''너는 뭐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 그럴수도 있는거지.
내가 또 사줄테니 그만 됐다.''며 더이상 얘기 하지 마라고 했다.
''그건 살수 있는게 아니야, 내가 직접 만든 종이장미라구.
난 정말 속이 상하다구''라고 말한 나를 쳐다보던 남편은
전혀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차라리..''네 마음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냐.
물에 다 풀어져 버린 저 종이꽃을 다시 어떻게 할수가 있겠냐?''고
말해 주었으면 그렇게 까지 화가 나지 않았을 텐데
못쓰게 된 종이꽃이 때문이 아니라 이젠 남편의 그 태도 때문에
더 속이 상하고 만 아침, 그 복잡함을 정리라고 해주는듯
비발디의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그이도 나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