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간난신고가 많은 여름이었다.
남편이 작년에이어 또다시 조기축구에 나가 운동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것이었다.
의료보험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시절이었으니
병원비를 고스란히 부담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년동안 여름철에 갖은짓을 되풀이한 남편이 야차같았다.
병원에서 깁스를하고 와선 하루이틀 집에 있다가 답답하다고
낚시행장을 꾸려가지고 낚시터로 휭하니 떠나가 버렸다.
원래 가정일에 무감한 남편이고 내가 가따부따 일절 말이 없으니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게 남편의 마음가짐이었고 우유부단함도 내재되어 있었다.
우리부분 하루에 몇마디 말나누지 않고 하루하루 위태하게 살아갔다.
남편은 조그맣게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거의 문을 닫다 시피하고
낚시터에다 진을 치고 가끔 와서 옷이나 갈아 입고 가는게 남편의 일과였다.
그러니 집안 경제가 형편없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고
내가 부업으로 하는 수출용품 뜨게질로 번 돈은 언발에 오줌누기로
아이들 할부책값과 과잣값에 불과했지
근본적인 호구지책을 해결하긴 어림반푼어치도 없었다.
물론 따로 모아 놓은 돈도 없었고...
그러자니 자연 굴뚝에서 연기가 끊어질 처지가 되었다.
비록 밥을 굶은한이 있어도 남에게 궁핍한 내색안하고
동기간에 돈거래 안하는게 나의 철칙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쌀이 떨어지면 라면을...
라면을 못 먹을 형편이라면 밀가루를 사다 수제비를 끓여 먹을지언정
누구에게 없이 사는 내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과 힘겹게 사는 사연을 두부공장 곁방살이하는 한수엄마라는 이는 잘알고 있었다.
나보단 두살 더 많은 언니였는데 음식을 하면 이물없이 나눠먹던 그런 사이었다.
한수엄마가 자기 집주인인 조미 할머니에게 우리 사정을 이야기 했는지
봉두난발을 해가지고 뜨게질을 하고 있는데 한수 엄마가 나를 불렀다.
"성휘야 우리 주인 아줌마가 와 보래..."
나는 무슨일인가 하고 두부공장 안채로 조심스레 들어 갔더니만
아주머니께서 헬쓱한 얼굴로 마루끝에서 올라오라고 맞으셨다.
왜그런지 연유를 몰라 얼떨떨 하던 차에
옆을 설핏 곁눈질해 보니 쌀푸대와 항아리가 두어개 놓여 있는게 보였다.
아주머니께서 "젊은게 애들 데리고 얼마나 고생이 많느냐고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하시면서 쌀과 항아리에 담은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짱아찌 조금 담았다고 같다 먹으라고 하셨다.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신세가 처량해서 운 것이 아니라
그래도 우릴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것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얼마를 느껴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후에 아주머니께서 병환이 깊어져 한림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에 문병을 가니 까칠하신 손으로 내손을 잡아주셨다.
이듬해 오월에 눈을 감으셨다.
조미 할머니 돌아가셨단 소식듣고 뛰어가 발인날까지 일을 해드렸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부족하지만 갚아 드린다는 마음으로....
그해 가을무렵 우린 온의동으로 이사를 왔다.
.
.
.
.
.
.
.
1997년 초여름에 전에 살던 그 동네에 갈 일이 있었다.
상전벽해라고...
많이 변해 있었다.
길이 넓어지고...
없던 길도 생기고...
조미 할아버지 생각이 문득 나서 한번 뵙고 인사나 드리고 가야겠단 생각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한보로 사려고 들어갔다.
예전에 그아줌마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어다.
"저어기 노인네들이 피실만한 담배 한보로 주세요... 안녕하셨어요? 저 예전에 여기 살던
성휘엄마예요...."하니 주인아줌마 유심히 처다보더니 아는체를 한다.
"어 그렇구려... 근대 여긴 어떻게? 담배는 누구 드릴려고 사는거유?" 하고 물었다.
"저 건너편 두부공장 있잖아요... 거기 할아버지 좀 뵙고 가려구요..."
아주머니 잠시 침묵하시더니....
"아이고 몰랐구려... 그 할아버지 몇년 전에 돌아 가셨어." 나는 섭섭함에 재우쳐 물었다.
"왜요? 어디 편찮으셔서 돌아 가셨나요?"
가겟방 아줌마 하는말이 "자식들때문이지 뭐겠수... 두부공장 다 말아먹고.. 공장 어디다가 목메고 돌아가셨다우~"
그소릴 듣는 순간...
아랫도리에 힘이 쫘악 빠졌다.
좀더 일찍 찾아 왔으면 한번을 뵐 수 있었을텐데...
살기가 급급해 아주머니께 받은 은혜 갚지 못하고 씁쓸한 자괴감이 짓눌러왔다.
돈주고 산 담배를 다시 물르면서
가겟방 문턱을 슬며시 빠져 나오며
눈을 들어 올려다 본 춘천의 태양이 슬프도록 찬란했다.
덧글: 조미 할머니와 조미 할아버지...
나눔의 미덕을 배우게 해주신 은혜 감사 드립니다.
저세상에서도 두분 행복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