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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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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풀꽃이 좋아해요.


BY 새봄 2003-06-11

비 냄새가 나요.
여름비 내리는 날 외갓집 마루에 앉아서 맡았던 그 흙냄새와 비슷했어요.

오늘 비는 잠시 왔다가 물건도 사가지도 않고 그냥 나가시는 손님인가봐요.
축축한 비 냄새만 훅 풍기고 가버렸어요.

아이들이 자기들만한 우산을 들고 길을 건넜어요.
우린 비가오면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한 사람은 비가오면 아줌마가 좋아할거라 그랬구요.
나는 풀꽃이 좋아할거라며 씀바귀 꽃이 피어있는 화단을 가르켰어요.

내 작은 화단엔 풀꽃이 피어 있어요.
괭이밥꽃이 피었고,
씀바귀꽃 한송이가 피어있고,
민들레는 벌써 지고 낙하산씨를 달고 어느땅엔가 무사히 착지를 했을거예요.
질경이도 꽃같지도 않은 꽃을 꽃이라 우기며 피고 지고 있지요.

이른봄
냉이꽃이 내 작은 화단에 이삿짐을 풀었어요.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이 냉이꽃 살림집이지요.
그러더니 망초대가 올라오고
민들레가 영역을 넓히더니
괭이밥이 제일 너른 마당을 갖게 되었어요.

난 아침마다 그들이 이뻐서 물을 주었어요.
차 끓여먹는 주전자로 흠뻑 적셔주니 이끼도 파랗게 잔디처럼 자라더군요.

도시를 깨끗이 가꾼다는 아줌마들이 호미를 들고 잡초라며 캐내려고 한 날은
온 몸으로 화단을 막고 제가 키우는거니까 뽑지마시라고 사정을 했구요.
아이들이 밟으려고 하면 ?아가서 야단도 쳤구요.
차를 주차하는 아저씨들이 내리면서 디딜려구 하면 꽃이 살고 있어요하고 밟지못하게 했지요.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내 작은 화단은 자연학습장이 되어 갔어요.
개미가 이 화단에 토박이였고
거미가 사냥을 하는 사냥터가 되더니
꿀벌이 지나가는 길에 들리던 날은 모두가 환영 색종이를 뿌렸다는 뒷얘기가 있었고요.
말벌이 오던 날은 모두가 긴장을 해서 공습경보가 울리기까지 했어요.

비 냄새가 났어요.
풀꽃 냄새도 섞였겠지요.
흙냄새도 물론이구요.
아....강아지똥 냄새도 섞였을거예요.
어제 질경이 이파리에 동네 강아지가 똥을 철푸덕 쌌더라구요.
지져분해 보여 치우려다가 거름되라고 안치웠는데...
질경이가 싫어할까요? 좋아할까요?

내 화단은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이예요.
나무를 보호한다는 철망 사이로 풀씨가 싹을 틔운거지요.
들에 피는 모든 꽃을 좋아하는 난 그들이 좋아 친구하기로 했어요.
척박하고 좁은 땅에 이사온 그들이 대견하고 예뻐요.

명아주댁도 있구요.
길죽하게 잎만 올라오는 잡초아저씨도 있구요.
처녀티가 나는 화사한 씀바귀도 있구요.
귀여운 괭이밥 아이들이 많구요.
고루고루 얼키고 설켜서 잘 살고 있지요.

이들로 인해 비가 내리면 정겹고 소박한 냄새가 나나봐요.
도시 냄새가 아닌...
그리움의 고향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