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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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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16) *아름다운 이웃*


BY 쟈스민 2001-09-10

우리집 아래층에는 경상도 아줌마가 사신다.

언제나 미소를 띈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만날때마다 정다운 말 몇마디로도
사람을 참 기분좋게 해 주는 바지런한 분이시다.

나이는 나보다 2살이 어리다고 하였지만
그 아줌마를 보면서 난 참 많은 걸 배운다.
내겐 항상 언니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뛰어난 살림솜씨 때문일까?

아파트에서 살다보면 앞집에 누가 사는지
아래층엔 누가 사는지 이웃들을 잘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서로들 살기가 바쁘다 보니 그저 아침 저녁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눈인사가 전부다.

지금의 아파트에 이사온지가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아마 가장 자주 만난 이웃이 아래층에 사는 아줌마였다.

언젠가 아이가 너무나 철저한(특수키 위의 꼭지까지 누르는)
문단속을 하곤 잠이 들어 버려서 열쇠가 있어도 집에 들어갈수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앞집 벨을 누르니 마침 집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아래층으로 가보니 아줌마는 늘 그랬듯이 푸근한 웃음으로
맞아주어서 아이가 깰때까지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일 이후로 그녀를 만나는 시간엔 좀더 깊숙한 눈인사를 할 수
있었고 말도 편안하게 건넬수가 있었다.

그녀의 사는 모습은 참 정갈하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집안은 아니지만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첫느낌이
무척 상쾌하고 깨끗했던 것 같다.

그녀는 또 얼마나 알뜰 살뜰한지 시장에 갈 때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자신을 위하여 운동에도 열심이었고...... 아이들에게도 정성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참 많은 여운을 남기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지난 토요일에 김치거리를 사러 시장엘 다녀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그녀는 니스통과 붓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의외의 표정을 한 내앞에서 언젠가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안방욕실앞
에 습기찬 장판지를 다시 발랐는데 니스칠을 미처 하지 못한 걸
기억하고는 그걸 칠해주려 왔다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나, 남편이나 무심하게 지나친 부분을
이웃인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가 그걸 발라주려고 하다니.....

도심의 아파트 생활은 문닫고 들어가 버리면 저마다 자유로움은
있을지 모르나 이웃과의 단절된 대화가 아쉬운 건 사실이다.

시원한 미숫가루 한 잔을 타서 함께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니스칠한 부분이 마르면 또 칠하고 ......
이렇게 5번에 걸쳐 깨끗이 마무리를 해 주는 그녀가 난 참 고마웠다.

그녀는 10월초에 이사를 간다 했다.
그래서 니스칠을 할 곳이 있어서 샀다가 우리집 생각이 났다 했다.
나는 모처럼 좋은 이웃을 만나서 기뻐하였는데 이제 그녀와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니 많이 서운하다.

그동안 위, 아래층 살면서
나는 김밥을 만들어 먹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녀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김밥한접시를 내밀수 있어 좋았고,
비가 오는 날엔 부침개 한쪽 부쳐서 함께 먹을 수 있어 좋았는데.....

그녀가 니스칠을 마치고 돌아간 오후에
큰 딸아이는 우연히 내게 노트 한권을 내민다.
제목은 "아줌마"였고, 글의 내용은 그 아이의 눈에 비친 아래층 아줌마의 부지런함과 상냥함이 그대로 들어있는 짧은 글 한편이 거기에
삐뚤삐뚤 써져 있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무엇인가
가슴에 울컥 와닿는게 있었다.
내가 느끼는 좋은 이웃에 대한 느낌을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내 아이가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우리가 그렇게 좋은 이웃을 만날수 있었던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지.

아이에게 아까 아줌마가 오셨을 때 왜 말 안했느냐고 하니까
부끄러워서 그랬노라고 아이는 그제서야 슬그머니 웃으며
학교 선생님께 잘썼다고 칭찬받았다는 말을 하는 거다.

우리의 좋은 이웃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그녀와 이제 한동네에서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녀가 떠나기전에 이말만은 꼭 하고 싶어진다.

"여주엄마..... 참 좋은 이웃이었는데 아쉬워요.
그동안 많이 고마웠어요"

토요일 늦은 저녁에 나는 어설픈 솜씨로 김치를 담갔고
갓 버무린 겉절이가 내딴에는 맛있게 보여서
한접시를 그녀가 떠나기전에 건네고 싶었다.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건
소중한 거 같다.

지난 겨울이던가 목감기에 걸려 있는 나에게
생각 몇쪽과 은행 몇알을 건네주던 그녀.....
그 집에 놀러간 내아이에게 손수 만든 돈까스를 들려 보네던
그녀 .....
그녀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그녀와 이별한 이후로도 아마 오래도록 내 가슴엔 남아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웃이었는데 ......

나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구수한 경상도 아지매로
그녀는 남아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