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가사 노동자여서는 안된다. 가정 경영자라야 한다." 노동자이면 임금만 받으면 그뿐이지만 가정경영자는 정당한 주식배당을 받게 되어있다. 문제는 domestic engineer로서 가정이라는 기업을 운영할 때 최소한 운영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신 분이 생각난다.
나의 가정운영철학 중 사람을 대하는 철학은 간단하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최근 딸이 외손녀를 내게 맡기면서 아기보는 사람을 내 집에 보냈다. 아침 9시출근 저녁5시 퇴근한다.
이 아줌마를 채용하면서 내 딸이 그 분에게 들려주는 말을 곁에서 들었다. "우리 엄마는 직선적이라서 무안하거나 마음 다칠 수가 있지만 경우 바른 분이니까 상당히 편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는거다. 단편적인 말속에 딸이 엄마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듣고 씁쓸해서 반성했던 적이 있다.
아줌마와 함께살이가 벌써 4개월을 접어든다. 아줌마에게 일의 대원칙은 "내가 아기를 볼때는 집안일을 돌봐주고 아줌마가 아기를 볼때는 가정일을 일체 하지말라" 였다.
집안일은 치우면 표가 나고 아기 보는 일은 표가 나지 않는다. 아기 보는 일은 표가 났다 하면 아기가 다치는 것 뿐이질 않겠는가? 하므로 표나는 일(가정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아기에게 표나는 일(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그래서 아기 봐주는 공은 없다 했으니 명심하라. 이상이 내집에서 일하는 대원칙이었다.
출근하더니 어느날 "오늘 할 일을 말씀해 주세요" 라고 했다. "오늘 특별히 할 일은 없어요 아기만 잘 보면 끝!"
그렇게 날이 흘러갔다. 한번도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가정경영마인드이다. 명령하면 명령한 일만 하면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니 짐이 가벼울지도 모른다. 또 명령한 나는 명령한 이상 일의 결과를 점검하게 되어있다. 점검 후에는 만족과 불만족의 분기점이 생길 것이다. 결국은 명령하게 되면 명령받는 사람이 종되게 만드는 일이다. 이 사람을 자유인이 되게 하고 종되게 할 마음이 없다. 몇달이 지나도록 전혀 명령하지 않는 것을 눈치챈 아줌마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는대로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야금야금 집안이 달라지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치우고 또 만들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벌써 자기 살림처럼 이렇게 저렇게 변화를 도모하며 내 의견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아줌마의 의견을 동의해주면 신바람나서 일을 하고 성취감을 맛보는 눈치다.
자기때문에 우리집이 깨끗해지고 변화하는 모습에 기뻐한다. 내가 바라던 "한식구모델"로 변모해가는 것을 보고 나도 즐겁다. 이제 형님 아우처럼 곧 내 가족이 되어갈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집 일은 더이상 우리일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때는 우리집에서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 말못하는 아기를 봐주는 아줌마는 주인의식을 갖지 않으면 아이사랑은 힘들다고 본다. 아이사랑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정말 고된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희생은 종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값진 희생의 댓가를 종의 의식을 가진자가 갖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이 공식은 내 며느리에게도 적용하여 남편없는 시집살이 4년간 "고부간의 창조적인 신화를 만들자" 라고 외치며 살아온 know how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