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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1)


BY 성주 2003-06-04

세상 밖으로(1)

내 안의 세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다. 사실 우리를 옥죄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안에 나를 가둬두는 편견들-여자라는 이름으로 제한되어지는 삶,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 존재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행을 계획했을 때 그 가능성에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건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과연 가능할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일년간 꼬박 저축을 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적인 질문과 대답을 과감하게 깨뜨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여행지로 동유럽을 택했다. 아직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의 순수, Gloomy Sunday의 무대가 된 곳, 프라하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 바츨라프 광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절규, 음악의 혼이 숨쉬는 도시, 무너진 베를린 장벽, 그런 것들을 날 것의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내가 모아놓은 돈만큼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품이 어떤 것이 있을까 살펴보았다. 몇 가지의 상품을 추려낼 수 있었고 그중에 하나를 우선 전화로 신청하였다. 남편에게 이야기한 것은 가장 나중이었다. 열 하루동안 집을 비워야 하기에 쉽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돈을 우송하고 여권을 만든 다음에야 늦은 밤 조용히 남편에게 여행이야기를 꺼냈다. 일년 전부터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느냐고, 처음에 남편은 침묵의 반응만을 보여주었다. 방학 때마다 시간을 낼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나였지만 설마 해외여행까지 실제로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남편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돈을 보낸 사실과 여권을 만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후 남편은 잘 다녀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함께 가자던 내 제안은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다. 일이 너무 많아 열하루나 시간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쉬웠다. 함께 그 시간들을 나눴다면 훨씬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을텐데. 그 후의 준비는 순조로웠다. 빠르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아이들이 갈아입을 옷 몇가지와 내복, 상비약등을 종류별로 준비하였다. 아이들의 일기장과 읽을 책 한 권씩 짐에 챙겼다. 또 어느 잡지에서 여행기와 여행 사진을 제출하면 심사하여 기백만원을 상금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맘 먹고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였다.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해있는 나로서는 디지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차였다. 하지만 여행 경비를 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농협티켓으로 사고를 친 것이다. 사실 여행자체가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여행가는 날, 이제부터 내게,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