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과거시험을 보러 온 선비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 둘 모여들어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어떤 시제가 나올까 궁금해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수런거림은 확성기에서 나오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에 이내 묻혀버리고 만다.
"대표들은 분야별로 줄을 서세요"
아직은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보니 역시 기상예보대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비와 시제가 맞아 떨어지면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아침준비를 마련해 놓고 바지런하게 준비물과 함께 주섬주섬 옷을 입으면서
집을 나선다.
참여의 폭을 넓혀 누구나 도전할수 있도록 할수 있는 대회였다면 어땠을까..
갖춰지지 않은 실력으로 대표라는 거나한 타이틀을 가지고 출발하는 나의마음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시간을 내어 일주일에 한번씩 공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 문예창작반으로
市에서의 요청이 왔고...
그 반에서 시와 수필부문으로 두명이 나가게 되었는데 내가 주자로 뽑히게 된
것이다.
모두다 참석하면 안되냐는 질문에 추천한 몇명만이 참가할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도전해 보는거야 하는 맘으로 한달 전부터 굳게 먹고 있었는데.....
도대회이라...응원군과 함께 온 사람들이 체육관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배가 아프다는 사람들...화장실 가는 사람들..
무척 긴장이 되나보다...
그런데 내 맘은 왜 편할까...
조금 체육관이 춥다는 생각외엔 그리 떨리거나 긴장이 되질 않았다.
해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신사임당을 뽑는 행사가 강릉에서 단오무렵쯤
되면 크게 열린다.
한국여성의 표상인 신사임당의 얼을 선양하기 위해 열리는 이 행사는 도내에서 예술적인 자질과
전통적인 부덕, 여성 스스로의 삶을 가꾸어 오고 있는 50세 이상의 훌륭한 여성을 뽑는 대회로
문예경연대회와 함께 30여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강원도의 큰 행사라 볼수 있다.
개회식이 끝나고 나니 진행요원들의 손에서 하나씩 시제가 나온다.
평창동계올림픽
평화통일
그리운 고향산하.........욱..이럴수가..
너무 광범위했고 상상도 못했던 시제이다..
서예와 자수부문 그리고 묵화 등은 체육관 바닥에 준비해 온 자리들을
깔고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기 위해 손놀림이 바쁘기만 하다.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한다.
너무 얼토당토 않는 시제여서였을까...
진행요원이 주는 뜨거운 녹차한잔을 들고 체육관 관중석으로 올라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앉아 어떻게 쓸까 골머리를 굴린다.
글이라는 것이...
쓰고 싶을때 써야 할텐데...
주어진 주제로 글을 쓰려니 무척이나 힘들다..
이렇게 해서 무슨 글이 나올까 싶다.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쓴 글이 잘 된 글일텐데..
연습장에 이것저것 끄적거려 보았다가 다시 지우기를 번복한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
내 마음에 내리고 있던 비와 함께 우울함을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써 내려갔다.
하지만....그리운 고향산하의.....시제에서 자꾸만 벗어나고 만다.
두시간여의 시간을 주면서 쓴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터..
원고지 열장 분의 글을 쓰고 또 정리해서 옮겨쓴다는 것이 내겐 무리였나..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추워짐은 자신없이 쓰는 글 속에서 조금이라도
낫게 보이려는 애씀이 보태어져 그런가보다.
대충 마무리를 하고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제목을 달았다....
"내 그리움 한덩이"
종료시간 5분을 남기고 제출하기는 했지만 괜시리 참석한게 아닌가 하는
후회스러움을 지울수가 없었다.
市에서 같이 나온 직원들과 분야별로 온 응원군들과 함께 모두 모여
목이 매인 식사를 마쳤다.
긴장을 해서인지 소화가 되질 않았다.
밖에서 차 한잔과 함께 여담을 나누며 한시간을 보내니 굳게 닫힌
체육관 문이 다시 열린다.
궁금해 못살겠다는 듯 사람들은 전시품이 걸려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수험생 결과 보듯이..
'야호'하는 환호와 함께 축하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시, 수필을 제외한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 위에 장원과 차상, 장려
라는 리본이 붙어 있다.
市에서는 자신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수상하게 됨에
커다란 자랑거리라도 된냥 타 시직원들에게 크게 자랑들을 한다.
우리 市에서는 동양자수 부문에서 장원을 하여 큰 축하인사를 받고
나역시 인사를 건넨다.
4년전 자수와 미술을 병행해 배우면서 결국 미술 쪽으로 깃발을 들어
주었는데 열심히 했으면 내가 자수대표로 또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ㅎㅎ
시와 수필은 꼼꼼히 읽어보고 심사하는지 도통 발표할 생각을 않는다.
뒤죽박죽 쓴 글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고개를 삐죽 내밀고 궁금해할까..
한참후 진행요원이 들고 나오는 것은 시 부문이었다.
4절 켄트지 위에 다시 옮겨 쓴 시부문의 수상작들..
장원은 친정아버지가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글을 표현했는데 훌륭했다.
두어시간 안에 저리 훌륭한 시가 나오다니...
모두가 찬탄을 금치 못한다.
조금 있으니 같이 동행했던 市직원이 내 손을 잡더니
"차상이에요 축하해요"한다.
순간 이렇게 기쁠 수가..
그래도 면목은 섰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기쁨이 밀려온다.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덩달아 축하한다는 말을 보내며 잠시의 어수선함을
뒤로하고 옆회관으로 신사임당 수상과 우리 수상자들이 함께하는 자리로
이동했다.
모든 시상식을 마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어 있었다.
하루만 봐 달라고 가게를 맡기고 나왔지만 수상에 시상식까지 곁들일진
몰라 도착시간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내 일터에 도착하는 시각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이렇게 난 살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와 흔적을 남긴다.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것들...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 맛좋은 양념이 아닐까 싶다.
난 배움의 욕구가 강렬하다.
꼭 배워서 전문가가 되야겟다는 생각보다는 하나하나 배워 나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렇게 해서 생각지도 않은 소득을 얻는다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아닐까.
처음 이곳 에세이방에 멋모르고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눈에 뜨이는
사람들의 글솜씨에 탄복하고 도전했던 글공부...
점점 그 매력에 매료되어 가는 도중에 받은 수상..
나의 이력서에 수상경력 한줄을 보태 준 내 중년의 색다른 경험이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한다.
여러분~~~축하해 주세요...
저 상먹었어여~~~~~2등이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