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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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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가을빛 여행


BY 푸른들 2003-05-11

아르헨띠나에 훌로렌시오 몰리나 깜뽀스란 화가가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아르헨띠나 깜뽀를 소재로 한 그의 그림을 무지 좋아하는
인간입니다
한국에 살때 외국 만화그림을 보며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아르헨띠나에 살면서 아! 그렇구나,느낀적이 가끔 있습니다.
배가 엄청 부른데 다리는 기형적으로 가늘고 긴 그림.
상체는 드럼통인데 하체는 작고 쓰러질듯한 그림.
가슴이 엄청 크고 발은 아주 작은 힐을 신은 아줌마.
잘록한 허리에 아주 커다란 아름다운 엉덩이 선의 그림.
그런데
깜뽀스 그림을 보면서 어머! 정말 그렇구나! 느끼게 됩니다.
깜뽀스 그림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아주 해학적입니다만
저는 눈물 나도록 가슴이 아립니다.
먼지날 듯한 황량한 들판에 눈이 커다란 가우쵸가 아주 재밌게
생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
전형적인 깜뽀 할마시의 부엌모습.
학교라고 보기도 힘든 먼지 부석거리는 느낌의 벽돌건물
앞에 몇명이 줄을 선 학생과 선생님의 모습.
이곳
아르헨띠나의 깜뽀(들판)는 대체적으로 비옥하다고 생각했고
어딜 가든 비옥한데
깜뽀스의 그림같은 곳이 있다는걸 여행 다니면서 보았고
눈크고 인상이 뚜렷한 사람이 농사꾼의 모습으로 있는걸
보면서 그랬었구나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햇빛 뜨겁게 내리 쐬고, 풀한포기 없이 황량한 벌판에
먼지 바람이라도 일면 잔모래가 입안에서 스석거릴 듯한 풍경
속에 아주 웃움나게 조화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서,
온몸이 바람이랑 섞인 사람 냄새가 날 듯한 그림을 보면서
내가 그안에 들어간 느낌입니다.

눈물 나도록 서럽습니다.
마음이 아리도록 그립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시간의 고향이 이토록 그리운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만큼 남았는지 모르지만
얼만큼 더 인생이라는 꿈을 꿀는지 모르지만,
왜 이리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한국의 가을 들판이 왜 그렇게 마음 저리도록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지금의 한국 들판은 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풀자루 들고 엄마 뒤 따라 다니며 메뚜기 잡던 가을 들판에서의
시간도,
차가 지나가면 먼지 나고 따분하던 코스모스 핀 한길가를 걷던
시간도
몹시 그립습니다.
왜 줄줄이 서서 땡볕에 소풍을 가야 하는지 푸념이던 그시간도
그립습니다.
비안개 가득한 포장도로를 젖던 말던 신경없이 그냥 걷던
그시간도 그립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의 모든 시간들이 이곳에서의 삶의 시간이
더해 갈수록 갈수 없는, 다시는
만질수 없고 느낄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젠 쉬고 싶습니다.
아침 눈뜨면
꿈이었구나! 느낌처럼
인생의 꿈이라면 아! 이젠 일어나야지 싶습니다.
어느날 눈뜨면 인생이라는 꿈에서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구나!
참 별일들도 다 있었구나 그렇게 슬픈일도 느낄수 있구나!
가슴한번 쓸어 내리고 기지재 켜고 싶습니다.
가을 햇빛 사이로 살포시 다가오며 마음 설레게하던
그향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찰랑이던 끝에서 흩어지던 맑은 웃움들도,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되지도 않던 말들을 열심히도 나누던
그 친구들이 눈물나게 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멀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차 한잔 아무 이유 없이 말 없이 같이 할
그때의 친구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어쩌다 가 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긴 여행을 하고 있나 봅니다.
저녁시간 도심가의 길을 걸으면서,
발걸음 사이에서 금빛으로 흩어지는 가을 햇빛에 시린눈을
가늘게 깜빡이며 뜨거운 눈물을 입안으로 꼭꼭 삼켰습니다.
아르헨띠나는 지금 오월이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