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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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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29) -- 이방인 (마지막 편)


BY ps 2003-05-09



"쿵쾅, 쿵쾅...."
고르지 않은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 바퀴의 요란한 소음이
약간씩 긴장된 얼굴을 하고있는 승객들 위로 가득 퍼지고
'이게 과연 뜰까?'라는 평소의 의구심이 드는 순간,
바퀴의 소음이 제트엔진이 내뿜는 바람소리와 바뀌면서
이륙을 알리는 '중력변화'가 느껴졌다.

오랫만에 찾은 고국...
항상 그러하듯 빠듯한 스케줄로 만나야 할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나를 태운 점보기는
웬지모를 안타까움에 콧등이 시큰해지는 나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웅장한 인천공항을 뒤로 한 채 짙푸른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30년 전에 김포공항을 떠나던 비행기가 그랬듯이.

부모님 따라 떠났던 전가족 이민...
외로움과 낯설은 문화로 힘들었던 초기..
앞서가며 인도해 줄 '인생의 선배'가 없어,
항상 새로운 것들과 부딪혀야했던 시절이었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우던 중반기..
자식 하나 먼저 보내는 아픔을 알았고
더 잘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살던 집을 처분해야했던 쓰라림도
맛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겪을 당시 그리도 힘들었던 세월이
지금 돌이켜 보면, 그저 '지금의 나'가 있기 위한 과정의 일부분이었다고
쉽게 생각되는 세월이기도 했다.

재도전 했던 사진점이 그런대로 성공적이었고
그것을 처분하여 마련한 돈을 밑천으로 인수한
조그만 사출공장을 운영해온 지 어느덧 10여년...
주위에서 부러워할 만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모든 면에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으나,
문득문득 잠 들었다 깨어나 내려다보는 드넓은 태평양은
'어디로 가는 길이냐?' 라는 대답없는 질문을 내게 던지며
나를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미래에 대한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했다.

열심히 살아왔고
자식들 마저 어느 정도 자기들 갈 길을 알아서 갈 수 있게 된 지금..
'이민자'라는 묘한 입장이 나를 또 하나의 갈림길 앞에 세움을 느꼈다.

넓은 태평양을 제 집처럼 노닐다가
때가 되어 제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마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돌아가 다시 뿌리박을 자리가 남아있지않은 듯한 안타까움!
자식들이 자라고 있고
후손들이 계속 살아갈 미국땅!
그러나 결코 나의 고향이 아닌 이 곳이 주는 이질감!

확신이 없이 둘 사이에서 계속 방황하는 나는
결국 '영원한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다는 자괴감이
L.A.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

왠지 제가 걸어온 길이 남들과 틀린듯 싶어
지난 세월을 써보자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몇달 정도면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년을 넘기게 됐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초반부가 힘들어서 그 시절 얘기가 많이 써졌구요,
후반부는 그저 남들처럼 '지지고 볶으며' 사는 평범한 생활이라
별로 쓸 얘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오래 전 먼 곳으로 떠난 이민 1.5세의 얘기였습니다.
글솜씨가 모자라 더 깊고 더 넓은 얘기는 쓸 수 없었지만
지난 30년의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답글을 달아주신 님들께
이런 저런 이유로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답글은 없었지만 꾸준히 읽어주신 다른 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그럼, 또.........


먼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