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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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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동동주에 두부김치라...


BY panji 2001-08-30

밤 열두시가 돼가면 난 어김없이 어디엔가 전화를 건다.
디리링...디리링...
몇 번이고 울려대도 응답이 없으면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다른 전화번호를 눌러댄다.
이번엔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전데요,어디세요?"
"으~음,여기가 새절역인가..."
운전중인 신랑은 한참 뜸을 들이며 얘기를 한다.
"일찍 오시네요?"
"응,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일찍 나왔어."
커피숍을 하는 신랑은 12시까지 일을 하다가 손님이 있으면 새벽 한시도 넘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
"애들은?"
"응,자."
"왜 전화했냐?"
"그냥.."
평소 서로에게 반말로 얘기하는 우리에겐 존대말이 어색하기만 해서 금세 본색을 드러낸다.
"시원한 맥주 한잔 할래?"
"난 맥주보다 동동주가 먹고 싶다."
"그럼 동동주를 먹던가."
"좋아,내가 나갈까?"
이렇게 뜻이 일치가 돼서 우리는 집앞 주점에서 만났다.
술을 좋아하는 신랑 기분 맞춰줄려고 밖에서 술을 먹자고 했는데 이럴때 신랑은 참 좋아한다.
동동주를 시켜놓고,안주는 뭐할까 고민하는데 아줌마가 어찌 기억하고는 전에 북어찜 먹을려다 못먹었다며 그거 한번 먹어보란다.
그래서 북어찜을 시켜놓고 서비스로 나온 고구마와 오이를 먹으며 며칠전부터 동동주가 먹고 싶었다는 내말에 신랑도 마누라 동동주를 한번 사줘야지 했다며 응수를 해온다.
동동주 사발을 들며 건배를 하고 그사이 나온 북어찜을 먹는데 아줌마 말대로 맛이 기가 막혔다.
아침에 학교에 가야될 아이들이 있어 나는 자꾸 시계를 쳐다보며 술잔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도 북어찜의 맛이좋아 북어에게 더 손이 갔다.
신랑도 맛이 좋다며 둘은 북어를 계속 먹어댔다.
자연 일찍 떨어진 안주에 항아리에 담겨진 동동주를 쳐다보며
"뭐,하나 더 시킬까?"
"알아서 해."
"아줌마!"
우린 아줌마를 옆에 세워두고 뭘 시킬지 의논을 했다.
"저번에 두부김치 맛있더라."
"그럼 두부김치 할까?"
"응!"
"아줌마,두부김치로 주세요."
아줌마는 두부김치 만들러 가고,우리는 주점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쳐다보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이 늦은 시각에 이런곳에서 술을 마시고 가면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 생각은 안하나 하고,
신랑은 그 기분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아저씨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아줌마가 갖다준 두부김치를 평을 해가며 젓가락을 열심히 놀려댔다.
어느정도 먹었더니 이놈의 배가 터질것 같았다.
"아이고,난 더이상 못먹겠다."
"그래도 먹어봐,아직 많이 남았잖아."
"안돼,배가 터질것 같고 더이상 먹으면 다시 나올것 같애."
그래도 신랑은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약골인 신랑은 평소에 많이 먹질 않는다.
술먹을때만 예외이지만.
동동주도 남기고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신랑에게
"그래도 다 먹고 가야지."
하며 끝까지 버티고 앉아서 먹는 신랑.
먹다 먹다 지친 신랑도
"아이고 더이상은 못 먹겠다.이정도면 양호하지?"
하면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술값을 내려고 신랑이 돈을 꺼내는데 만원짜리 지폐가 수두룩하다.
어떻게든 하나 뺏어볼 생각에 하나만 달라고 했더니 대꾸도 하지 않는다.
술값이 14,000원이 나왔는데 아줌마가 천원짜리로 달랜다.
거스름돈이 없다고,
신랑은 13,000원은 되는데 천원 한장만 나더러 내란다.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
"일대일로 바꿔."
"아니,찾아보면 어디엔가 있을거야."
하며 계속 천원 하나를 찾는 신랑과 자꾸 바꾸자는 나를 아줌마는 재밌다며 쳐다보았다.
내가 전혀 져줄것 같지도 않고 신랑도 내 뜻에 따라줄 것 같지도 않자,아줌마가 오천원짜리 달라고 하신다.
결국엔 신랑이 오천원짜리 내며 천원 거슬러 받았다.
우린 이렇게 사소한 일로도 니꺼내꺼 따지며 양보를 안한다.
물론 이게 우리의 사는 재미이지만.
하지만 남들은 이해를 못한다.
어떻게 부부간에 니꺼내꺼 따지며 싸우냐고,
........
동동주를 마셨겠다.
취기가 약간 오른 나는 사람도 없는 새벽길을 신랑 옆에 딱 달라붙어 팔짱을 끼며 걸었다.
대낮엔 엄두도 못낼 일을 해본것이다.
신랑도 기분이 좋은지 한번 쳐다본다.
맑은 새벽공기 속을 걸어오면서 새삼 내가 신혼인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행복한 기분은 쭉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