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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고통의 순간들을 회상하며..........6


BY 물안개 2001-08-29


양장점은 아이들의 학교와 집의 중간 지점이라 학교가 끝나면 언제든

들려서 엄마를 볼수 있고 가게에서 간단한 취사도 할수있어 내아이들

은 엄마가 직접 차려 주는 저녁도 먹을 수가 있었죠.

그래도 아이들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자라 주어서 어느덧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적은 아이는 4학년...

큰아이는 국민학교 때부터 반장 부반장만 계속 하더니 중학교 에서도

반장이 되었습니다.

이젠 반장좀 그만 시키라고 찾아 갔더니....

뭐 통솔?돛?있다나....

양장점도 사람을 안쓰고 나혼자 시다일 부터 재단 까지 혼자 다했

으므로 인건비가 안나가니 그런대로 잘되었습니다.

생활 하고도 제법 저축을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전생에 무슨 지은 죄가 많길래....

나에게 이렇듯 시련이 닥치는지....

그날도 일요일 이라 가게를 쉬어야 되는데,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
.
일을 하다 말고 빨래를 하기 위해 집으로 와서 일부는 세탁기에

빨고 일부는 삶고, 마음은 빨리 끝내고 옷을 다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고,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면서 낚시 다녀와서 잠자고 있는 남편이

세탁기에 빨래 만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야속한 마음과,

오락실에 있던 큰아이를 선생님이 붙들어 양장점에 데리고 왔을때

일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도 모르게 자식도 아비를 닮아가나 피는 못속인 다더니 어쩌고

하면서 투덜거리는 소리를 자고 있는줄 알았던 남편이 듣고 1초의

참을성이 없던 그이는 방문을 부서져라 열어 젓히고 소리를 질렀

습니다.

기왕 듣게된것 나도 지지 않고 세탁기 뚜껑을 열고 그안을 들여다

보며 말대꾸를 하고 있었지요.

아이고 맙소사!

극도로 화가 치밀은 남편은 옆에서 끓고있던 빨래통을 집어들어 던지

는데 순간적으로 그 통이 나에게로 날라오는것만 같에 한발 뒤로 물러

났는데....

그통은 내등에 맞았고 나는 끓는물을 그대로 뒤집어 ?㎢彭탕熾?

여름이라 옷까지 얕게 입고,

그순간 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이 잡혀 먹힐때 처럼 처절하게 울부 짖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기도 하고, 내인생이 너무도 처량하여 울부짖었

습니다.

겁을먹은 남편도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가까운 곳에 친하게 지내던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형님이 차를 가지고 와서 고대병원 응급실

로 실려 갔습니다.

2도 화상 ! 데인곳은 얼굴만 빼놓고 양팔과 목서부터 등전체 얼굴과

하체만 빼놓고 붕대로 칭칭 감고 일단 집으로 왔는데....

누워서 잠들지도 못하고 이불을 앞에다 놓고 않아 머리를 기대고

무섭게 짓누른는 고통과 밤새 싸움을 하는동안 남편에 대한 미움이

마음 저밑바닥서 끓어 올라 이를 갈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부풀어 오랐던 상처 부위가 터지면서 두껍게 감아놓은

붕대 밑으로 진물이 줄줄 흘러 내리는데 어떻게 감당을 할수가 없어

응급실로 갔더니 당장 죽겠는 사람 치료는 안해주고 수납 하고

와라 뭐해라....

남편에겐 병원간다는 말도 하기싫고 증오 스런 마음만 가득하여 이젠

끝을 내야지,정말 더는살수가 없다....

더는 걸어 다닐수가 없어 응급실 의자에 털썩 주저않아 친구를

불러는데,

수납만 간신히 해주고 급한 볼일이 있다며 가버리고 응급실에선

응급 환자가 왔다면서 나는 봐주지도 않고 생명이 위급한 환자

보느라 정신 없이 바쁘고....

너무나 아파서 턱이 덜덜 떨릴 정도의 고통 속에서 누구 에게 인지

모르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상대는 남편, 의사, 간호사, 나를 두고 가버린 친구!

한참 후에 고통 속에서 치료를 받고 걸어 나오려는데,눈앞에 아무것

도 안보이고 보이는건 오직 노랑색....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걸을 수가 없어 간호사에게

"아가씨 영양제좀 하나 놔주세요 ?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고 혈압 제가는겄까지는 알았는데....

혼수 상태에서 깨어보니 치료중에 젖었던 옷은 말라 있고 영양제는

놨는지 안놨는지,

또다시 담벽을 붇들고 걷기시작.....

살아야 한다는 어떤 희망이 있는것도 아니고 죽어야 겠다는 생각도

없이 무의식의 상태로 그냥....

한발 한발 걸었지요.

집을 거의다 왔을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네 음식점으로 가서

털썩 주저 않으며 "나~~좀 뭐 좀 주세요?

그언니는 내가 생전 먹어 보지도 안았던 보신탕을 한그릇 갔다

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다먹고 조금 힘을 내어서 집으로 왔는데,

시누이가 연락을 받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세째 동서가 화상전문

병원에서 입원실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바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속옷도 하나 못챙기고 안국동에 있는

화상 전문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 해보면 고대 병원에 그대로 있었으면 아마도 화가 몸속에

들어가 죽었거나 흉터가 보기싫게 남아 있으리라.

그 병원에서 20일 입원 하고 퇴원해서 통원 치료받고 지금 이렇게

께끗하게 치료가 되었으니....

그때 병수발 들어주신 시댁 식구이면서 친언니 같은 세째 형님께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여자들이 생각할때 아마도 아이 낳을때 가장 많이 아플 것이라고

하겠지만 아이는 낳을때 많이 아파야 하루쯤 아프면 괜찬아 지는데

화상은 완치가 될때까지 그 고통이 이루말로 표현 할수가 없다.

다 낳았다 해도 가려움으로 또 고통을 당하는데 ?J어서 화상부위에

상처가 나면 잘낳지 않으므로 ?R지도 못하고 ?p년이 지나도록

가려움으로 고생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