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애교라고는 약에 쓸래도 ?아볼 수
없는 여편네인데다 게으르기까지 해 우리 남편 속을 뒤
집기가 한두번이 아닌 인간이다.
견우 직녀처럼 한 달에 한두번 만나는 부부이건만 남편
이 올 때마다 기분좋게 해줄지를 모른다. 왔어? 무표정
한 얼굴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훽 돌아서
서 방으로 들어간다.
식구들하고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 굳이 월요일 새벽
기차를 타는 남편을 배웅할 때도, 조심해 가...한마디
하고는 남편 나가자마자 문 딸깍 잠그고는 그대로 이불
로 돌진해 뻗어 자버리니...
이런 멋대가리 없는 여편네하고 사는 남자의 속이 얼마
나 썩었을까? 뒤집어 생각해 보니 너무 미안하고 염치
가 없었다. 해서 오늘은 안하던 짓을 하기로 했다. 오후
2시 18분 도착하는 기차야...남편의 통보를 받는 순간
목소리도 나긋나긋 마중을 나가겠다고 대꾸를 했다.
순간 뻥찐 표정이 눈에 잡힐 듯, 맹맹한 목소리로 남편
이 말을 받았다. 뭐, 그럴 거 까지야. 택시 타고 들어가
면 돼지. 아니야, 내가 나갈께. 여긴 비가 내리고 있거
든... 그래? 그럼 나오던지...
도착 십여분 전에 역사로 들어서서 남편을 기다리기 시
작했다. 신혼처럼 초 다퉈 남편얼굴을 보고 싶고 괜시
리 가슴도 두근거렸다.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속
에 드디어 낯익은 얼굴 등장! 여기야...손 흔들며 앞으
로 달려 나갔다.
남편도 기분이 좋은지 환한 얼굴로 씩 웃는다. 다정하게
팔장끼고 주차장으로 돌아가 남편을 정중하게 모시고 집
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몹시 좋아진 남편이 말이 많아진
다. 서울에서 있었던 이야기, 친구, 후배소식, 초롱이에
대한 추억까지...
녹차잔 서로 따르며 다정스레 한담을 나눈다. 사랑하는 우
리 서방님, 저녁엔 무슨 별식을 해줄까? 잠시 고민하다 잡
채를 해주기로 했다. 딸 해먹이려고 준비해 둔 재료를 꺼
내 지지고 볶고, 부지런히 요리를 시작했다.
기차에서 사먹은 점심이 부실했던지 남편이 채근을 한다.
우선 잡채하고 술 한잔 줘라... 참깨 숭숭 얹어 먹음직스
럽게 담은 잡채접시를 주니 맛있다며 정신없이 먹는다.
하구한 날 매식에 질리다 집에서 해준, 그야말로 가정식
을 먹으니 어찌 꿀맛이 아니겠는가...따로 떨어져 살아
남편 좋아하는 음식 못해 주는 게 새삼스레 가슴이 아려
온다.
둘이 마주앉아 서로 많이 먹으라고 웃고 떠들며 유쾌한
저녁만찬을 유감없이 즐겼다. 내일은 어떤 반찬을 해줘
갖고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까? 미리 메뉴를 고민하며 뒷
설겆이를 하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애타는 그리움에 목메이다 만나는 견우 직녀처럼, 우리도
애틋한 사랑만 간직할 수 있다면 월말부부도 할만한 것
이야...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