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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뿌리에서 났건만...(1)


BY 잔다르크 2003-04-08

식목일에
왕벚꽃이 만발한
금오산 중턱에서
친정 가족모임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후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1남 5녀와 그 아들 딸들이 다.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삶의 모습은
어찌 그리 제각각 인지...



[첫째인 맏딸과 그 후손들]

내가 살던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십리 쯤 되는 곳으로
시집을 가서인지
우리집과는 자주 왕래를 하며 살았다.

방학이면 가서 살다시피 했고
오봉산으로 봄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산아래 동네에 사는
큰아지매 집 담 너머로 고모를 불러
담임선생님 몰래 던져 주시는 용돈을 챙기곤 했다.

세익스피어 전집을
다 읽은 것도
여름방학의 어느 날
그 사랑마루에 누워서였다.

외가에만 가면
불쌍하다고 붙잡고 울어대는 통에
무척 싫었다는
고명딸 고종사촌언니는
늦여름 저녁 설겆이를 끝내면
십 여리 읍내에 있는 극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곤 했다.

친엄마와 아들이
범죄자와 검사로 나오는 신파조 영화였는데
엄마를 몰라보는 검사 아들이
야속하고 슬퍼서
무척 울었던 기억이 난다.

큰고모는
4남 1녀를 낳고
6번 째 아이를 출산하다 돌아가셨다.
집에서 아기를 틀다
땅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갓난아이를 품은 채
저세상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 후
인자한 새고모가 들어오셔
3남매를 더 낳으셨으니
8남매의 대가족이다.

서시어머니와
8남매의 맏이란 핸디캡 때문에
늦장가를 간 큰오빠는
지방 소도시 읍장으로 근무 중이고,

도회지에서 함께 학교를 다닌
나하고 한 살 차이인
친구같았던 오빠는
구미에서 병원을 개업했고,

경찰, 주부, 대표이사 등
다양한 모양새로
다복하게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엔 늘,
엄마 없는 외손주들 생각에
한숨으로 하루를 열곤 하셨는데
돈독한 형제애로 사시는 걸 아시면
아마 지하에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버지 형제들이 모이는 기회가 있으면
그 자식들과 아래 고모들은
먼저 간 큰아지매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살아계셔
이 자리에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