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화창한 날씨.
게다가 토요일.
오늘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밝은 옷을 골랐다.
기왕이면 트렌체코트도 아이보리, 스타킹도 아이보리,
어제 직원에게 선물 받은 연핑크 빛 파시미나 살짝 두르고.
봄빛 물씬 풍기는 색상의 의상으로 갈아 입고
막 출근하려는데 전화가 온다.
'얘, 등산 안 갈래?'
아니, 이른 아침부터 웬 등산??
삼십년 지기 중학생 때부터의 친구 전화다.
목소리가 붕 뜬 걸로 보아 그녀는 이미 출발한 모양.
'얘는...
그러면 좀 더 일찍 전활 하던지,
어제나 미리 귀띰을 해 주던지...
나 오늘은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려고 하고 있는데...'
몹씨 아쉬워 대답이 질질 느려진다.
'이제야 출근한단 말이야?
난 지금 양을산 입구 주차장인데...'
남편 출근 시키고 그녀는 이번 주 토요일은 비번이라서
우리가 잘 다니던 산에 오르려고 나선 모양이다.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다시 집에 들어가 옷 갈아 입고 나오기도 그렇고 하여
친구만 그냥 다녀오라고 아쉬운 여운을 남겼다.
사람이 일생 동안
자신의 모든 걸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서로의 흉금을 거리낌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마음 속 깊은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내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함께 아파해 주는 친구...
삼십여년 전 중학교 1학년 12월.
난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시골이라 해도 남녀 공학에 10학급이 넘었던 학교라
규모가 상당히 컸고
나는 자신만만한 학급의 실장이었다.
시골에서 전학 온 '촌 뇬'이라고 금방 텃새가 시작되었다.
그래.
내 진면목을 보여 줄께.
너희들이 내 실력을 모르고 까분다 이거지...
수업 시간마다 적극적으로 발표를 해댔다.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었는데
국어, 수학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
마침 전교 1등 하는 애가 그 반에 있었는데
그 애와 나 그리고 한 두명 정도만 만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의 눈초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노트 좀 보자는 아이,
참고서는 뭘 보느냐 묻는 아이,
집은 어디냐고 관심을 보이는 아이...
오십여명의 아이들 가운데 유난히 덩치가 크고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내 뒤편에 앉은.
내성적인지 별 말수도 없고
그저 방관자처럼 그 모든 것들을 묵묵히 바라만 보는 아이였다.
그 당시에 큰 오빠가 조선일보 지국장을 하고 있었는데
겨울 방학을 맞아 난 신문배달을 하겠다고 부모님을 졸라
신문보급소엘 가게 되었다.
한겨울에 새벽 네시면 온 시내가 고요 속에 파묻히는 시각.
그 이른 시각에 역전 대합실은 신문 배달을 하려고 나온
중고등학생들로 꽉 메워져 있었다.
바로 그 곳에서 난 그 아일 만났다.
본래 좀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인 나는
반갑게 그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화들짝 놀라며 쭈볏거리던 그 아이.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우울한 표정만큼 가정이 몹씨도 빈곤한 아이였다.
그리고 자존심도 강하고 어른스러운 아이.
그 이후로 우리는 점점 친구가 되어 갔다.
술 주정꾼에 바람둥이인 아버지,
그리고 비슷한 성격의 서로 엄마가 다른 오빠들과 언니들...
그들은 수시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었다.
그 많은 식구가 아홉평짜리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다락방에서는 오빠들이 사는 거 같았고
그나마 작은 방 하나는 자취생에게 세를 주고...
친구는 한밤중이면 부자간의 싸움을 피해
옥상으로 뛰어 올라 가 밤을 새곤 했다고 한다.
친구의 우울함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 지를 알고 부터
난 그녀에게 더 다가가게 되었다.
납부금도 제 때에 못 내고
언젠가는 한 밤중에 친구 엄마와 우리집을 찾아 와
돈을 빌려 간 적도 있었다.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 지
' 걔 아버지는 순 망나니라더라.
술주정뱅이에 바람둥이에... 마누라가 몇이나 된다던데...
그리고 사방에 빚 투성이래...'
라시며 엄마는 그 친구를 측은히 여기시고
방학 때면 늘 우리집에서 나랑 붙어 있는 그 친구에게도
마치 친 딸처럼 대해 주셨다.
그녀는 방학 때도 늘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병 공장에서 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때 무거운 병 박스를 들다 허리에 무리가 가
상당히 힘들어 하기도 했다.
춥고 가난하고 어두웠던 사춘기를 벗어 나
어렵사리 여고를 마친 그녀는
어느날 보육원 보모로 취업을 했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에게 어찌나 헌신적이었는지
난 늘 마음 속으로
'그래, 넌 꼭 복 받을거야.
복 받구 말구...'를 되뇌곤 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리는 서로 싸우기도 하고
때론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
밤새 서로 데려다 주고
또 다시 데려다 주고를 반복하다 결국 우리집에서 자고 마는
일들을 반복하는 동안 성인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선을 본다며 날더러 그 남자를 꼭 봐주라고 연락이 왔다.
'네가 오케이하면 난 결혼 할려고...'
친구의 일생이 걸린 문제라서 상당히 고민을 했다.
다행히도 맞선 본 그 남자는
착하고 성실해 보였다.
'얘, 사람은 좋아 보인다.'
내 이 한마디에 결혼을 결심해 버린 친구.
선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난 그녀가 열심히 살아 온 만큼
앞으로도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리라 확신이 섰기에
마음 속 깊이 앞으로는 정말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이제 그녀의 아이들이나 내 아이들이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나이보다 훌쩍 자라 버렸다.
그녀는 내 예상대로 정말 열심히 살아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되어
그 옛날 자신처럼 불우한 이들을 위한 업무를 보고 있다.
남편 또한 어찌나 성실하고 착한 지
자신의 봉급에선 단 한 푼도 축 내지 않는 사람인지라
시부모님 사시는 읍내에다 땅을 사서
자신들이 노후에 살 별장을 짓기로 했다 한다.
돌이켜 보면 정말 암울했던 어린 시절.
그녀와 나는 묵묵히 그 세월들과 더불어
한 걸음씩 위를 향해 성장해 왔던 것 같다.
누구랄 것도 없이 어느 쪽에서건 위로가 필요하면
만사 젖혀 두고 달려 오는 친구.
누군가 슬픔에 겨워 지쳐있을 땐
함께 아파하며 부축해 주는 친구.
한 밤중에 자다가도,
'나,회식하다 음주했는데 어떡하니? 차를?...'
하고 제 남편이 아닌 나에게 전화 한 친구를 위해
하품하며 달려 나간 날 보며 놀라던 그녀의 동료들의 표정.
아무래도 전생에 그녀와 난 연인이었거나 부부였거나...
'우리 이 다음에 시집 가면 옆 집에서 살자'
비록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우리는 늘 부르면 오분 안에 달려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게 되었다.
물론 서로 바빠 매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얘, 뭐하니, 우리 싸우나 가자.'
밤중에라도 부르면
맨발로 부시시한 얼굴에 작업복 차림으로 선뜻 나서며
우린 어느새 소녀적 말투로 돌아 간다.
'기집애야, 좀 미리 연락 좀 하고 다녀.
나, 목욕용품 사무실에 두고 왔단 말여.'
'에~~그, 이 기집애야, 내 거 있으니까 아무 염려 말어...'
'너 제발 살 좀 빼라,
널 보면 유달산이 내 앞에 앉아 있는 거 같단 말이야.'
'내 몸이 워때서?? 아직 구십킬로는 아니란 말이야..ㅋㅋㅋ'
나 아파하는 동안
내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이 위로를 해 준 내 친구.
오늘 오후엔 등산 다녀 온 그녀와
드라이브나 할까? 싸우나를 할까?
내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커피부터 준비해야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