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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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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찍은 사진


BY 노피솔 2001-08-13

같은 집에서 층수를 달리하는 이사를 한 후...
근 10여일간을 온통 짐정리, 집정리를 하다보니...
휴가 아닌 휴가는 다 지나가버렸다.

정작 휴가를 떠나기로 했을 때는 바빠서 떠나지 못하고
엄한 때 내리 쉰 셈이다. 아.....정말 악몽같은 휴식기간이였다.

말이 휴식이지.......내내 이삿짐 정리하기에 바뻤고
또 내게 달려드는 두 꼬마녀석 뒷치닥거리에 세끼 끼니 차려
내기까지.........정말 편할 시간이 요만치도 없었다.

지난주 화요일 정도부터 밤공기가 무척이나 싸늘해졌다.
입추가 지났다더니만......정말 가을이 코 앞에 서 있음을 피부로
느끼겠다. 이제 곧 산들은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겠구나......

사철의 산은 모두 아름답지만......가을산만이 전해줄 수 있는
풍성함과 깊음의 향기를 곧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대가 된다.

짐정리를 하다보니...
부모님의 사진이 실린 액자 두점이 오랜만에 손에 잡혔다.

당신들 스스로 미리 찍어두신 영정 사진이였다.
문득 집어든......그 사진을 바라보며......덜커덩.....가슴이 내려
앉는다.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그리고 두 분이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겠지만.......이제 70이 넘어선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 것이 무한정 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가슴을
후벼파고든다.

아아.....그 전에.......정말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텐데......

잘 산다는 기준이야....생각하기 나름이고
나 또한 나름대로 잘 살아내고 있지만.....

부모가 바라보는 자식의 행복이란 것,
그 들이 희망하는 자식의 행복이란 것.......
거기에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차이가 있을터인즉.......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여도.......
그래도 내 부모가 나를 키우고 또 성인으로서 내가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그 마음은 어리석게도 심도있게 헤아리기가 어려우니
내 어찌 부모님의 심저에 있는 그 깊은 봉우리와 계곡들을 알 수
있으랴.......

나로 인하여 그 분들의 가슴에 깊은 강물이 흐르거나
나로 인하여 그 분들의 마음에 밝은 햇살이 비추는 것.......
혹은 나로 인하여 그 분들의 영혼에 어떤 것들이 각인되고 있는지.....

부모님의 미리 찍어둔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끝내......
한 줄기 습한 것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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