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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월21일자에 손풍금님 책소개


BY 박 라일락 2003-02-24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안효숙 지음/마고북스

사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억울한 이유는 본인이 가해자로 지목받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가해자가 되기 쉽다는 점에 있다. 

이를테면 ‘존재에 대한 자각’없이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그는 가해자가 되기 십상이다. 
좀 더 과격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 땅에 가해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는 이미 가해자이기 쉽다. 

물론 논리가 비약하고 있다. 
그러나 한 아줌마의 책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를 읽다보면 
이 땅의 사내는 어떤 식으로든지 가해자란 사실을 아프게 자각하게 된다. 
저자 안씨는 여자 장돌뱅이다. 충청도 오지에서 5일장을 떠돌며 화장품을 판다. 
책은 그의 고생기와 장터에서 만난 사람 관찰기로 엮어져 있다. 
물론 저자의 한탄 섞인 자기애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쉽사리 희망을 떠올리는 전형적인 태도도 거슬린다.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한번 잡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가없는 인생에 대한 경의’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인생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는커녕 저주를 퍼붓고 있다.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일삼는 남편, 장터에 나앉아 푼돈을 버는 아내의 돈을 빼앗는 자 등등…. 
이 인생이 남성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삶에 퍼붓는 그의 저주는 곧바로 남성들에게로 향해진다.

그러나 책이 살아있는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푸념과 한탄과 절망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라앉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탱탱볼처럼 바닥에 닿자마자 튀어오르는 가없는 삶의 예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제목처럼 ‘자꾸만 살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며 
삶에의 열정을 되비친다. 자못 심오한 아이러니다. 

사실 놓아버리는 것이 더 좋을 것같은 시점에서 왜 놓고 싶지 않은 것인지. 
놓아버려도 될 만한 사연이 절절히 나오는 가운데 그가 되뇌는 
‘자꾸만 살고 싶었다’란 말은 논리상 엉뚱하지만 너무나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남성은 이 책에서 정확히 안티히어로로 등장한다. 
부도가 나서 쌓인 빚을 갚을 길이 없자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된 마당에 그냥 대충 살자. 무엇으로 빚을 갚고 무엇으로 다시 시작할 거냐. 
꿈꾸지 마라 이젠 우린 다 틀린 거다.” 

어떻게 보면 남편의 이 말은 너무나 정확하다. 
거침없는 현실인식은 가혹하리만치 똑떨어진다. 
사실 패자부활전이 어려운 한국사회에서 한번 나락에 떨어지면 복구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안티히어로는 그 사실을 너무나 정확하게 안다. 
그래서 남성은 영원히 이 삶의 주인공(히어로)이 될 수 없다. 
반면 위대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 여신(女神)은 이 국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이렇게 된 마당에 자꾸만 살고 싶었다… 
너무나도 분명한 그 현실을 나 몰라라 눈 감을 수 없기에….” 

한 사람은 분명한 현실을 인정하고 나자빠지지만… 
다른 한 사람은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눈 감지 않겠다고 말한다.

누가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한국 남자들이 억울해해야 할 것은 이 국면에서 가해자 여부가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가진 권력적 성향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영원히 이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책은 그런 상황을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배문성기자 msbae@munhwa.co.kr

ps;
안효숙은 손풍금님 본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