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성당을 지날때면 외국인 신부님은 성모 마리아상 앞의 화단을 가꾸고 계셨다.
학교갔다 올 즈음이면 늘 볼수있는 모습이었다.
성당 옆에 붙은 연탄공장은 시커먼 모습만 담고 있었다. 일하는 아저씨들 얼굴도 시커멓고 옷도 시커멓고 마당에서 모이 쪼아 먹는 비들기 앞가슴도 시커멓고 지붕도 시커멓고 담도 시커멓고 유리도 시커멓고 그 앞을 지나는 길도 그랬다.
하지만 같은 담을 나누고 있던 성당은 늘 평화로웠고 꽃들로 가득찼고 새소리로 가득 찼다.
빨간 벽돌은 선명했으며 신부님의 얼굴은 하얗고 눈은 투명하게 파랬다.
집에 가다가 무료하면 성당에 들어가 화단옆 벤치에 앉아 혼자 놀다 가고는 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내 거기 앉아 쉬었다 가는지...
우리집 누렁이, 겅중겅중 바보처럼 키만 큼 누렁이는 나를 보고 멀리서 꼬리를 마구 흔들며 달려온다. 목을 만져주면 데구르를 뒹군다.
꽃잎으로 코를 간질러 주며 길죽한 입을 벌려 내 손목까지 물어버리는데 하나도 안 아프게 문다.
누렁이 바보....
파란 눈의 신부님을 보면 얼마나 짖어 대는지 바보 누렁이를 보고 신부님은 항복 항복 하면서 두손을 앞세워 들고 옆길로 돌아서 사제관을 들어가시고는 했다.
수녀님들께서 교리관으로 줄서서 들어가는걸 보니 토요일이었다.
이럴때가 아니었네, 어머니가 일찍 오시는 날이다.
아버지는 벌써 낚시가방을 둘러메고 김씨 아저씨하고 고기 잡으로 소두머리 저수지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성당에서 오백보쯤 걸어 나오면 도랑 옆 삼거리 수동 방앗간옆 높은 옛 기와집인 우리집이 보인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어머니가 오신게다.
누렁이 녀석 앞서가는데 긴 꼬리가 춤을 춘다.
도랑엔 오늘도 망태거지들이 내려가 깨진 병을 줍고 있고 재봉이 오빠도 그중에 섞여있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개져 거지들 틈에 섞여 버린다.
"엄마아.."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넘어진다. 넘어져.." 하는 어머니곁엔 어머니 키만큼 높이 쌓인 빨랫감이 있고 방안엔 반들반들한 재봉틀이 벌써 펼쳐져 있었다.
"가방 내려놓고 이리와서 펌푸질좀 해봐, 엄마 빨래 좀 헹구게.."하면 신이 나 어머니 얼굴 쳐다보면서 펌프질을 했다.
맑은물이 우르르 쏟아졌다.
힘이 들어도 숨이 차도 어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아서 어머니가 시키는 일은 다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일만 했고 한시도 쉬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어머니가 낮잠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아프다 하면서도 누워 계신 적이 없다.
밥상을 들여놓고는 어머니는 부뚜막에 앉아서 밥을 드셨는데 늘 물에 만 밥이였다.
지금 생각하니 밥이 쉬어서 찬물에 헹구어 드신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오빠가 물고기 잡는 쪽대를 사달라고 했다.
걸음이 빠른 어머니가 쪽대를 사러가면서 오빠와 나에게 "빨리 걸어봐, 사람은 부지런 해야지, 걸음도 빨리 빨리 걷고, 게으른 사람이나 할일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거다."하셨고 오바와 나는 내기라도 하듯 뛰다시피 걸어갔다.
연탄공장 옆으로 여성회관을 짓는다고 몇채의 집을 부숴놓았다.
땅에는 부수진 시멘트 조각들이 울퉁불퉁 밟혔는데 앞서가던 어머니께서 "조심해서 걸어. 넘어지면 큰일난다."하시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셨다.
오빠와 내가 뛰어가 보니 어머니 발등 위로 대못이 튀어나와 있었다.
깨진 시멘트 위로 못이 솟아 있었는데 어머니의 고무신을 뚫고 발등 위로 올라온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보고 저리 가 있으라고 손짓 하시더니 두 손으로 발바닥에 달린 시멘트 덩어리를 잡아 뺐는데 피를 한 웅큼이나 쏟고 나서야 못이 빠졌다.
큰오빠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면서 쪽대 안살테니 집으로 돌아가자 했지만 어머니는 괜찮다면서 절룩거리는 발로 시장엘가서 오빠에게 쪽대를 사주셨다.
아무말없이 주저 앉아 못을 빼던 어머니, 아무말 없이 앞서 걷던 어머니,
어머니란 존재는 녹슨 못에 살이 뚫려도 괜찮은줄 알았다. 그때는...
내가 어른이 되어 모든것을 다 잃고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날때 "뒤돌아 보지 마라. 산사람은 다 살게 되어있다. 사는게 힘들면 아이들 생각하면서 살아라.
마음 독하게 먹고, 절대 뒤돌아 보지 말고 앞만 보고 살아라."하면서 내 등을 밀어주시던 어머니...
지금 내가 길을 걷다가 녹슨 못이 발등 위로 올라왔다면 나도 어머니처럼 한점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시멘트못을 혼자 침묵하며 빼낼수 있을까.
어머니를 만나러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정년퇴임 후 편하게 노후를 보내야 할 어머니가 못난 딸때문에 얼마나 상심하고 계신지는 굽은 허리, 퀭한 눈빛 , 마른 침 넘기는 윤기잃은 목울대만 보아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머니 양손에 들려져 있는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이게 필요했구나.. 무겁기는 하네.. 어디 아픈곳은 없니?"
"........엄마..."
"밥 굶으면 절대 안된다. 네몸은 너혼자 몸이 아닌겨. 내 몸이기도 하고 네 아이들 몸이기도 하다. 이컴퓨터 내가 간수해 두기를 잘 한거니?
그래, 사는곳은 어디니? 가보자"
"엄마, 오지마. 그냥 여기서 돌아가셔요."
"그래. 그래. 네가 그게 편하다면 내 그냥 가마. 몸건강해야 한다.'
어머니는 뒤돌아서서 바지춤의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준다.
"엄마, 나 돈 있는데..."
"그래도 받아, 더 주고 싶은데..."
"엄마, 오래 살아야 해. 꼭이요. 제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엄마한테 잘 사는 모습 보일수 있을때까지."
"그래, 내 오래 살으마, 밥 꼭 챙겨먹고 이번 추석에는 꼭 와서 언니 오빠들하고 같이 보내, 혼자 있지 말고.. 그리고 아프면 안되다. 아프면 안된다."하고 돌아서던 어머니의 그 말이 내겐 약이었다.
엄마의 눈자위가 유난히 파랗게 보였던 그날..
암세포가 어머니의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던 걸 어머니와 나만 모르고 있었던 그날.
자꾸 나보고 건강해야 한다고, 네몸은 내몸이면서 아이들몸이니 건강이 최고라고 하면서 어머니가 시외버스터미널로 되돌아 섰을 때, 나는 갑자기 하늘에서 내게 마른벼락이라도 쳐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