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는 정월 대보름이면 설날 보다 더 재미가 났답니다.
귀하디 귀한 깡통에 구멍을 숭숭내고 불붙은 숯과 나무조각을 넣어 휙휙 돌려대면 토닥거리면서 시뻘건 불이 살아납니다.
아이들은 그걸들고 싹을 틔운 보리논으로 가서 논뚝에 불을 붙여
편을 갈라 누가 더 빨리 타는지 시합을 합니다.
넓디 넓은 보리논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불이 사그라질 때 쯤엔 남에집 울타리에서 주인 몰래 나뭇가지
한두개씩을 빼 들고선 걸음아 날 살려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 얼굴엔 그으름으로 얼룩져있고 가끔씩
나이론 옷이나 양말에는 불구멍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엄마의 꾸지람은 담장을 넘을 수 밖에.....
다음날 아침이면 남의 집 싸릿문에 서서 친구나 동생. 언니들의
이름을 불러서 더위를 팔았답니다.
그리고 낯엔 어른들이 꼬깔모자를 쓰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굿을 시작합니다.
밤이 어두워지도록 동네의 안녕을 위해서...
갓 나온 보리를 그렇게 밟아대도 심하게 야?쳐≠?않은 이유를
한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보리는 밟아줘야 튼튼하게 자란다는 이유를...
하지만 이 모든것들이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남습니다.
그 넓고 푸르던 보리논은 이제는 좀처럼 볼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답던 대보름의 밤 불꽃놀이도 이젠 추억속의 동화의 한 장면으로 간직하며 나이를 먹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