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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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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탱자나무


BY ooyyssa 2003-02-11


국거리 푸성귀나 심어 놓았던, 집 옆 ‘우영밭’(텃밭)에 열 그루 정도의 귤나무를 심은 것은 내가 열 살쯤 되던 해였다.
초가집 ‘올레’(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울담에 개나리가 여린 가지를 내밀어 봄볕을 쬐고 있는 삼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나물 반, 잡초 반이던 ‘우영밭’이 갈아엎어져 흙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바삐 흙을 고르던 어머니는
“ 여기에 귤나무를 심을거야.....” 물끄러미 보는 내게 신이 나서 말했다.

열다섯 평이 되나마나한 그 작은 텃밭에 심을 수 있는 귤나무는
몇 그루 되지도 않을 텐데, 어머니는 몇 천 평의 과수원을 가진
사람들과 같아질 꿈을 꾸었을까?

며칠이 지나 어머니는 연녹색의 가는 줄기를 가진 열 몇 그루의 묘목을 가지고 와서 정성스레 심었다.
“이게 귤나무야? "
“아니. 그건 탱자나무야.”
“탱자나무? 귤나무를 심는다더니.....”

탱자나무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야트막한 돌담에 울타리 대용으로 어느 집 울 밖에나 심어져 있었다.
동그랗고 샛노란 탱자는 생각만 해도 신물이 넘어갈 만큼 씁쓸하고 시며 딱딱하여 먹을 수도 없는데,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어머니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린 가지들은 하늘거리며 나날이 초록색이 짙어갔다.
그리고 날이 더워질 무렵, 은미 아버지가 귤나무 옆에서
무슨 일인가 열심히 하고 돌아갔다.
그게 감귤나무의 순을 붙이는 ‘접붙이기’였다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다.

귤나무는 보통 탱자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귤나무 순을 붙여 만든다.
탱자묘목 웃가지를 잘라내고 붙인 귤나무 새순은, 쓸모없는 탱자나무를 부의 상징인 귤나무로 바꿔 놓는다.

어머니는 저물도록 일하고도 다섯 아이의 명절 옷은커녕 세끼니 밥 먹이는 일조차 힘들어가는 살림을, 탱자의 줄기를 자르듯 잘라내고 싶었나보다.
가난의 싹을 잘라내고 그 위에 과수원집의 풍요를 옮겨, 접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된장 항아리 너머 보이는 순동이네 귤이 노랗게 익고, 누런 신문지 깔린 솔내 나는 나무 상자에 담겨 경운기에 실려 나가도,
어머니의 귤나무엔 귤이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그 가을에도. 콩 타작이 다 끝나갈 때쯤 밭주인이 와서 콩 자루의
개수를 세어 반을 싣고 가버리자, 고개를 숙이고, 한 알씩 콩이
섞인 콩깍지들을 모아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어머니는 말없이 키질을 했다.

꼬박 3년을 어머니의 한숨 섞인 눈초리를 받으며 자란 어머니의
귤나무엔 드디어 꽃이 피고 콩알만한 작은 귤이 달렸다.
익기도 전에 우리 형제들은 푸리딩딩한 귤을 손으로 당겨 따서,
작은 손톱을 단단한 껍질에 꼭 찍어 껍질을 깠다.
시커먼 손톱에 눌린 자리에선 시큼한 냄새와 함께 작은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다.
물방울이 눈에 들어가 깜빡이다, 아직 익지 않은 흰 속살을 베어 물고는 너무 시어 진저리를 치며 눈을 감았다.

귤이 다 익어갈 무렵엔, 우리 손이 닿는 바깥 쪽 나뭇가지엔 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첫 수확을 한 날, 마루 끝엔 귤이 든 자루 하나와 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껍질도 두껍고, 표면도 꺼칠하고, 크기도 제각각인 ‘돌탱이귤’을 신나게 꺼내 먹는 우리를 어머니는 또 말없이 바라보았다.

뉘 집은 귤 팔아 대학 등록금 내고, 뭐를 장만 했다더라하는 말이 들려 왔지만, 어머니의 귤은 내다 팔기는커녕, 다섯 아이 겨우내
간식거리로도 부족했다.

어머니는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제사상에 올릴 양으로 ‘고팡’(광)의 항아리 안에 숨겨 놓았다.
나는 ‘고팡’ 의 나무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항아리 안에서,
껍질이 푸석하게 부풀어 오른 귤을 꺼내 먹고는,
제삿날이 가까와 오면, 어머니에게 들킬까 두려워했다.

탱자나무는 귤나무로 잘 자랐고, 해마다 귤나무는 조금씩 더 많은 수확을 냈지만, 서너 자루의 귤로는 어머니의 소망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은 탱자나무 가시처럼 따가왔다.

친구가 먹으라고 갖다 준 귤의 야들야들한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으니, 시원한 단물이 입안에 고인다.
귤 한쪽과 함께 아픔 한 덩어리도 꿀꺽 넘어간다.

예쁘지도 않고, 열매도 쓴 탱자나무는 자기의 뿌리 위에 접붙여진 귤나무 순을 불평도 없이 길러 내어 열매 맺게 한다.
그래서 귤 하나에는 탱자의 씁쓸하고 신맛과 귤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다 들어 있다.

이십년이 지나, 따뜻한 방에 배 깔고 누워, 귤을 까먹으며
생각하니,
내 안에도 꿋꿋했던 어머니의 단단한 뿌리가 있어,
세상의 비바람 견디어 낼 수 있었나보다.

뿌리만 남은 나의 탱자나무는 노랗고 맛있는 귤 같은 내 아이들을
쑥쑥 자라게 키워내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