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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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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는 내 고향


BY 사피나 2001-08-02

고향땅에 25년만에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였지요.

5학년을 막 시작하면서 떠나온 고향을 내 나이 36살이 되어서야

가 보았습니다.

남들은 탄광촌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북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하는 그곳이 내 고향이지요.

밤마다 꿈마다 보고싶었던 고향

아침이면 꿩 울음소리에 잠이깨고 해발이 1100정도 되는 곳이라

마당에 서면 발 밑으로 구름이 깔리는 곳이지요

낙엽송 내음이 안개에 쌓여서 온 동네를 휘감고 지나가고 진달래가

흐드러지는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너무 먹어 입이 온통 까매진곤

했었지요.

너무 산이 높아서 모기 구경도 못해보고 자란 나

어른들에게는 고달픈 삶이 있었겠지만 어린 우리들은 마냥 행복할

수 있었던건 자연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여기 나와서야 멸종 위기의 꽃이며

기념물이 될 만한 것들이란걸 알았으니까요.

오미자를 돈 주고 사야 되는 거라는것도 도시라는 곳으로 이사를

나와서야 알았답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겠구나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는 않았

던 것이 그때는 탄광촌 경기가 좋아서 풍요로왔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는 화절령이라는 곳이지요.

꽃이 꺽인 고개라는 뜻이 있는 이 고개는 임꺽정이 지나가다가 거기

살고 있던 꽃처럼 아름다운 처녀의 순결을 가져갔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호랑이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골 깊고 물 맑던 내 고향이

못내 그리워 남편을 졸라 봄에 산나물을 뜯자는 핑계로 가 보았습

니다.

전날 밤은 잠도 오지 않았어요.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날 알아봐 주실까나,동창들이 하나 둘 정도는

살고 있겠지,아님 다 떠나고 없을라나 이런저런 생각뿐이었습니다.

친정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나 꼭두 새벽에 출발하여 아침7시쯤 사북

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카지노가 새워진 동네가 바로 제가 초등학교 일 이 학년을 다닌곳이

지요.

골짜기가 다 변했더군요.

살던 집들도 없고 덜렁 카지노 하나랑 그 밑에 무수한 전당포들,,,,

설마 하면서 삼학년 사학년을 다닌 화절령을 가 보았습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황토 펄펄 날리던 신작로 길은 흙이 다 패여

서 차가 올라 갈수도 없는 시골길이 되어버렸더군요.

한참을 올라갔더니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전 제 눈을 의심할수밖에 없었어요.

학교가 있던 자리는 예전에 여기에 학교가 있었습니다라는 기념비

하나 달랑 서있고 건물은 흔적도 없더군요.

그뿐이 아니였어요.

우리 살던 동네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집이 있었다는 흔적하나 남아

있지 않더군요.

누가 신다가 버리고 간 것인지 탄 캐러 들어갈때 신는 장화 한짝만

이 나를 반겨 주더군요.

그럴리가 없어요.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 버린걸까요?

산에 의지하고 탄광에 의지해 살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떵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름없는 새만이 저를 반겨주더군요.

친구들을 만나리라고 설래이며 잠을 못이루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온 저를 비웃는 바람만이 헛된 꿈이었다는 소리를 하고 지나가더군요.

아이들 웃음소리랑,술취하면 우시던 아저씨랑 다 어디로 가버린걸

까요.

폐광을 메우면서 지하수마져 없어져서 여름에도 손이 시려워 담글

수도 없던 개울물이랑 우물마저 사라져 버렸더군요.

사람이 사라지면서 활기도 사라지고 전설마져 사라져버린 버림받은

느낌으로 누워있는 내 고향땅.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버렸을까요?

가끔 내려가 많이 변했구나 참으로 많은 발전을 하는구나 하고

느껴볼수 있는 고향이 사라져버린거예요.

실향민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 눈물이 마구 흐르더군요.

내 친구들아

너희들 어디서 살고 있니?

그 고향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걸 너희는 알고 있니?

아님 그 고향이 사라져 버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거길 지키고 있

었던 거니?

하늘만 높고 바람만 서러운 내 고향 화절령아

내가 내년에도 내려가마

가서 너를 기억해주마

거기에 사람이 살았다는걸 거기서 꿈을 키웠다는걸, 사는 냄새가

풍기던 동네였다는걸 내가 가서 기억해 줄께

내 마음속에서만이라도 사라지지 말아다오.

폐광촌 내 고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