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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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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BY 농부아지매 2003-02-05

해걸음에 뒷밭 비닐 하우스 온상에 뿌려놓은

고추씨 덮으러 갔다 왔다.

행여나 입춘도 지났으니 냉이가 나와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호미를 챙기고 비닐봉투를 들고 나섰는데,

아직 제빛깔 냉이는 기대하기 어렵고 그래도 겨우내 ?A?A이 견뎌낸

시커먼 냉이 뿌리라도 발견하려고 이리 저리 둘러보니

햇살이 많이 비추이는 곳에 더러 더러 볼 수 있었다.

땅이 녹은 곳에서는 쉽게 캘 수가 있었는데,

약간 그늘진 곳에서는 냉이가 딱딱한 얼음속에 뿌리를 박고

날잡아잡수 하고 있었다.



냉이를 캐다가 갑자기 옛생각이 났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아직은 세간살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콩 한 줌 쌀 한 됫박 내맘대로 친정에 퍼줄 주변머리 없던

새댁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도시로 이사나와 살면서

파 한뿌리 사면서도 시골에 텃밭에 지천이었던 파밭이 생각나

아까워 하시던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마늘이며 배추며 콩이며 수확 거둘때마다

늘 친정엄마를 생각하고 했었는데......

그 때도 지금보다 조금 늦은, 막 냉이가 파랗게 나올 무렵이었는데,

밭에 지천인 냉이는 내가 유일하게 시댁 눈치 안보고

친정에 퍼줄 수 있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짬이 나면 호미를 들고 뒷밭으로 냉이를 캐러 갔다.

아마 들일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며칠후면 친정아버지 생신이라 그 때 가져갈 생각으로

캐온 즉시 다듬어 비닐 봉투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면서도

참나원 그것도 왜 시어머니 눈치가 보이는지...

혹시나 냉이 부피가 줄어들기라도 해서

시어머니가 물어보시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하는 걱정에

꼭꼭 눌러 나중에 퍼낸 후에 적당히 부풀리면

감쪽같겠지 하는 생각으로 잔뜩 눌러담았다.

그리곤 며칠후에 무슨 007작전도 아니고

슬그머니 냉이를 덜어내어 몰래 가방에 넣어

친정에 가져가는데 성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다.

당당히 얘기하고 가져갈것이지 무슨 죄짓는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때 난 그런 아지매였다.

그런데 친정에 도착해 의기양양 냉이를 펼쳐놓으니

아니 꼴이 그게 뭔지....

빨리는 일주일도 전에 캔것도 있어서

누렇게 뜨지 않으면 물러버린게 절반은 되었다.

속으로 가슴이 얼마나 아리던지....

그래도 시골에서 올라온 것이라고 좋아라 하시던 친정엄마 모습에서

겨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지난 얘기를 해주셨는데,

나처럼 새댁시절에 엄마도 장사를 하시던 외할머니 생각에

마늘을 몰래 까서 방 한귀투이에 모아 두었다가

친정에 가져간 일이 있었는데

그만 다 썩어버려 안타까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도 내림인지....

우리 모녀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오늘은 저녁식탁에 냉이된장찌개를 끓여내고

남편에게 옛얘기를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