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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 출연하다


BY [리 본] 2003-01-24




방송국에 출연하다




방송국에 출연하다

방송국에 출연하다



방송국에 출연하다



방송국에 출연하다

서울사는 언니는 가끔 신선한 뉴우스를 가지고 집에 내려 왔다. 
어느날은 할머니의 방송국 출연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우리할머니는 소리를 아주 잘 하시는 분이었다. 
"회심곡, 수심가, 자진난봉가, 산염불등 이북소리였는데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가락이 듣고 있으면 
저절로 억장이 무너지는 듯 눈물이 나는 슬픈곡조였다. 
장수만세의 원조격인 동양라디오(T.B.C) 최계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장수무대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처음엔 할머니가 소리를 하시고 나중엔 식구들과 함께 동요나 가요를 불러 
가족의 화목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접수와 사전심사등은 언니와 할머니가 수고하고 
우리는 방송에 출연해서 부를 노래를 연습했다.
우리식구라야 고작 서너명도 안되었고
(우리는 일가친척이 전혀없다 아버지도 이북분이라..)
인원수가 모자라 이웃에 사는 내친구 선영이네 식구를 모았다. 
할머니, 언니, 나, 선영이, 고전무용을 잘하는 쌍둥이인 선영이 언니들...
몇날 며칠 목청아프게 연습한 노래는 "클레멘타인"이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할머니는 소리는 잘하셔도 노래는 전혀 못하셨다.
한마디로 양악에는 음치셨다. 
시간나면 열심히 가르쳐 드려도 음이 맞질 않고 발음도 이상했다.
"나의 사랑 나의 사랑"을 "나의 사령 나의 사령... "  
"랑"과 "령"의 구분이 안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고향인 강원도 통천은 함경도와 가까워 
그 쪽 사투리가 심하고 교정이 안되는 발음이 몇개 있었다. 
할머니의 노래 가르침은 포기한 채 우리는 짬짬이 모여서 
열심히 노래 연습을하고 예행연습을 거쳐 
일주일 후 신세계백화점의 전신인 동양백화점에서 녹음을 했다. 
그때는 방송사가 따로 없어서 같은 회사계열의 백화점을 이용해 녹음과 녹화를 했던 모양이다. 
동양방송국이 T.V 방송을 언제 개국했는지 몰라도 
백화점 4층에서 녹화장에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가수들이 노래하는걸 봤는데 
그때 본 가수는 현미와 이금희 그리고 권혜경이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검정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검정장갑을 끼고 머리는 후까시를 넣어 부풀린 헤어스타일이었다.

돌발사태 없이 노래를 무난히 행사를 치뤄 우리는 2등을 했다.
잘한건지 못한건지 할머니의 기분은 시큰둥 하시는 표정이었고
소리를 잘하셔 명창대회도 나가서 수상도 하신분이라 그정도는 성에 차시지 않은 것 같았다. 
2등으로 수여하는 상품을 손에 가득 부여잡고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먹고 룰루랄라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다.
보름정도 기다린 후에 라디오에서 방송을했다.
토요일저녁에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재방송을 했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 당시에는 T.V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T.V로 방영이 됐는지 모르겠으나 
서울사는 아시는 분이 T.V로 보셨다는 분이 계셨으니 
녹화테이프가 보존되어 있다면 옛날의 그시절을 되돌려 보고 싶다. 
그곳엔 위풍당당하던 나의 할머니와 코흘리개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리라....


1964년의 여름의 일이다.

방송국에 출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