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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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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언발을 녹이며


BY 어수리 2003-01-09

밖에서 내내 눈사람을 만든다,썰매를 탄다 하면서
신나게 놀고 들어온 아이들 손발이 꽁꽁 얼었다.

아이들 껴준 장갑이 젖을대로 젖었는데도
껴주면서 절대로 벗으면 안된다는 엄마의 엄포때문이었던지
벗어버릴 생각을 못하고 말았나부다.
젖은 장갑때문에 손이 더 얼어붙고 얼마나 더 시려웠을까....
생각하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엄마가 한심스럽다.

옷들을 벗기니,어딘가에 숨어있던 눈들이
녹지않은 채 우수수 바닥으로 흩어진다.
손,발을 만져보니, 내내 따뜻한 이불안에서 뎁혀져 있었던
에미손이 민망할 정도로 차디차다.

아이 발을 쥐고서 조물조물 주물러준다.
입으로 가져가 호호~ 불어도 본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우리 둘째,
제 손과 제 발을 에미에게 붙잡혀 있는게
못내 좀이 쑤시던지 이내 손발을 빼내어 달아난다.

그 조막같은 손이 꽁꽁 얼어 굽어 펴지지도 않는 걸 보니
애간장이 다 녹는듯 한데,
이리 좀 와봐,엄마가 따뜻하게 해줄께~
하며, 아무리 달래도 아이는 못들은 척,성가시다는 듯
제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릴적 내 생각이 난다.
나 또한 한겨울 밖에서 들어오면,
언 손을 잡고 화들짝 놀라시며 만져주시던 엄마의 손이 있었다.
당신도 내 손을 주물주물 만져주시며
당신의 따뜻한 온기를 내게 조금이라고 나누어주시려 애쓰셨다.

그때, 나또한 뭐가 그리 성가시고,좀이 쑤시던지,
미처 엄마의 온기가 내게 전해지기도 전에
황급히 빼내곤했다.
손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축축한 발을 부여잡으시고
만지실때는 간지럽기까지 한게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성마르게 내빼다가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그때는 그리도 언손을 녹이시려는 당신 마음을 몰랐었고
역정 내시는 당신 맘을 헤아리기는 더더욱 어려웠으니
그저 혼나는 게 서럽고 억울할 뿐이었다.

지금 좀더 만져주고 싶은데도 에미속을 모르고
한들한들 돌아다니고 있는 저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렇듯 부아가 나는데....
이제서야, 역정까지 내시던 당신의 맘을 조금 알것도 같으다.

싸구려 신발속에서 이리 저리 뒤틀려 버린 내 어미의 발을,
나도 당신이 그랬던것 처럼 조물조물 만져드릴 수 있을까......
그동안 당신 무릎이 시리다고 얘기할 적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쳤던 기억이 부끄럽다.

이번 명절에는 오래오래 당신의 수족을
만져 드려야지.....
어쩌면 안하던 짓 하는 딸내미가 낯설어
당신도 황망히 수족을 빼내실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