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주 4.5일 근무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61

그 녀의 일터에서는 (10)...선입견


BY 동해바다 2003-01-09


"안녕히 가세요"

친절히 문을 열어 주면서 인사까지 했지만 처음 손님에게 대했던 
행동을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 올라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만의 고정관념이 아닌 누구든지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채찍질했던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인다...

하필 추울때 고장이 날껀 뭔가..
혹한 속에서 고장난 히타를 둘러치고 메치고 씨름하고 있던 참이었다.

유리벽 밖에서 들어 오려는 허름한 손님 하나...
  
여늬때 같으면 얼른 나가 문을 열어 주면서 '자동문 아닙니다'하며
손님을 대하곤 하는데 그냥 멀뚱히 보고만 있었던 그녀...
큰 오판에 지금 이 순간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그녀이다..

한참을 문 앞에서 헤매던 허름한 손님이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가게 안에서 겁을 약간 먹고 서 있던 그녀...

"청바지 좀 보려구요"하는 짧은 말 한마디를 얼마나 어렵게 
내뱉던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 이게 아닌데'하는 판단이 선다.

순간 그녀는 얼른 손님에게로 다가가 미안함을 보상이나 하려는 듯
친절하게 옷을 골라 권한다.

혼돈이 온다.
그녀의 이중성이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재되어 있는 속물근성에 따끔한 채찍을 가하고 싶어진다.

연말연시 아니 시도때도 없이 찾아 들어 손을 내미는 장애인들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 것이다.

뇌성마비 장애인..
무척이나 불편한 몸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다 하면서
스타일과 싸이즈를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통이 넓은 것보다는 좁은 바지로....
어두운 색 보다는 밝은 색으로....
자기가 지금 입고 있는 스타일로...
웬만한 손님들보다 더 정확하게 응답을 한다.

이것 저것 권해주는 내 손이 무안하게 입에 본드를 발랐는지
말 한마디 안하고 그냥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거에 비하면 비록 말은 어눌하지만 그녀가 대하기 무척 편한
손님 축이다.

그 손님은
"오늘 살건 아니구요...구경만 하려구요"한다.
흔쾌히 괜찮다면서 옷을 골라 주는데 찢어진 청바지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무 많이 찢어 졌네요"하면서 웃는 그 손님...
참 맑은 모습이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 허름했던 손님....  
"구경 잘 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본다.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장애인들로 인해 생긴 피해자들...
오늘 들어왔던 그 손님은 처음 문을 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엿한 손님인데 가게 주인은 안에서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
'넌 우리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눈에 비친, 머릿속에 박혀 있는 선입감으로 오인했던
아니 어쩌면 본성일 수도 있는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씁쓰레하다.

그 손님은 갔지만...
손님을 맞이함에 있어 커다란 실수를 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한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