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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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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거리를 생각하다.


BY 청안애어 2002-12-22

부산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이제부터 대전에 도착하기까지는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할 터이다. 몇 년 전만 하여도 한 달에 두 번씩 이용하던 경부고속도로였지만 대진고속도로가 개통된 후로는 두 번째쯤 되나보다. 남편은 친구의 늦은 결혼식에 덩달아 힘겨웠는지 일찌감치 운전대를 넘기고 눈을 감았다. 경부고속도로는 대진고속도로에 비해 급커브가 심하고 구불구불 휘어진 곳이 많으며 길바닥도 울퉁불퉁하다. 게다가 통행하는 차량, 특히 화물차가 많아서 초보운전에서 겨우 업그레이드 된 나를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언양휴게소를 지나자마자 차들이 조금씩 지체한다. 제 아무리 달려도 시속 80km를 넘어서질 못한다. 발끝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달리는데 해가 호흡을 가다듬는가? 눈앞에 크기를 잴 수 없는 겨울수채화 한 폭이 걸린다. 해가 내뿜는 입김으로 서쪽하늘은 붉게 물들고 난 덩달아 깊은 숨을 몰아쉰다. 노을이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는건가...사고나면 네가 책임질래? 슬쩍 웃음이 난다. 고속도로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운전자들에게 이런 풍경은 분명 휴식이며, 여백이며, 삶의 보너스다. 때마침, 여린 빗방울이 토독토독 창문을 두드려 애상에 젖은 내 마음을 깨워준다.

해가 잠들자 어둠이 깨어나고, 고속도로의 차들은 하나 둘씩 헤드라이트를 켠다. 나도 켜놓았던 미등에서 한 톤을 높이고 어둠을 깨우는데 일조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의 후미등불이 마치 꿈틀거리는 용 같다. 불빛에서 용을 연상하다니...야광용이라도 있음인가?^^ 언제가 중국등(燈) 축제장에서, 얇은 천을 휘감아 무척이나 긴 용을 만들어 그 안에 등을 달아 놓았었다. 그 불빛이 얼마나 화려한지 해운대 푸른 물이 불게 물들어 버릴 것만 같았는데... 그 기억이 짧게 되살아났음이다. 차들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100, 110... 애써 100km 이상을 밟지 않으려는 내 차 주변을 야간 경주하듯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차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차들은 다시 속도를 줄이고 지체를 한다. 자리는 바뀌었지만 물결처럼 어우러진 차량들의 불빛은 여전하다. 아, 이 불빛들...얼마 전, 전국 곳곳에서 미선, 효순이를 위하여 국민들이 받쳐 든 촛불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나는 비록, 신문이나 뉴스로만 접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마음만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가여운 목숨... 하지만 결코 헛되지 않을, 무지몽매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自主라는 두 글자를 일깨워 준 뜻깊은 죽음. 뜻깊은 죽음이라니? 내가 말 해 놓고도 참 말 같잖은 말이다. 그 푸른 목숨을 감히 어디에다 비한단 말인가...가슴 한 켠에 생명의 무게가 묵직하니 내려앉는다.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에도 나는 안전거리 확보에 마음을 쓴다. 남편이 운전을 가르쳐주며 가장 자주 했던 말이다. 안전거리유지 하라, 방어운전 하라... 이런 날 비웃기라도 하듯 대부분의 차들이 내 앞으로 끼여든다. 낯선 차가 내 앞으로 끼여들면 나는 또 거리를 띄우고, 거리를 두기가 바쁘게 다른 차가 또 끼여들고 나는 또 거리를 띄우고...젠장, 고속도로에서 안전거리가 도대체 있기는 있단 말인가? 입 바르고 행동 바른 남편에게 괜히 심술이 난다. 대충 요령껏 하라고 가르쳐주지, 안전거리, 안전거리, 양보운전, 양보운전... 우리나라 운전자들에게 얼마나 해당이 될 거라고. 어느 순간 내 앞에 큰 트럭이 달려가고 있다. 난 여전히 안전거리를 띄웠지만 한참을 달려도 우리 사이엔 아무도 끼여들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누가 트럭 뒤에 자진해서 끼여들겠는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조금 더디 가긴 해도 불쑥 끼여드는 차들이 없으니 운전하는 발길도, 손길도, 마음도 한결 편안하다.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지고 난 속도를 조금 더 늦춘다.

안전거리라는 것이 어찌 달리는 차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사람과 사람의 거리, 사람과 자연의 거리, 사람과 사물의 거리, 사물과 사물의 거리...
어떠한 것이든지 ‘거리’는 중요하다. 내가 네가 될 수 없는,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없는 바에야 모든 것에는 거리를 두어야한다. 그것도 안전하게.

부부가 무촌이라고 해서, 몸을 섞으며 산다고 해서 마음까지 다 섞지는 못한다. 배우자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트집잡을 필요도 없으며, 억지로 하나되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란 동등한 인격체로서 거리를 두고 마주보아야한다. 그래야 제대로 보인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깊이가 달라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내 몸을 빌어 낳은 자식이지만 아이가 세상에 첫 울음으로 신고식을 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아빠라고 해서, 엄마라고 해서 내 것인냥 쥐었다 놓았다 할 수는 없다. 그저, 제 스스로 굳건히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때까지 아낌없이 보살펴 줘야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사랑해 줘야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권리보다 책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 이 말을 하는 나는 참 부끄럽다^^;.-

자연과의 거리? 자연(自然)은 솔직하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준다. 우린 준 만큼 받는 것이다. 해마다 겪는 물난리가 어찌 온전한 천재지변인가,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일을 하늘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우리가 망쳐놓은 만큼 딱 그만큼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산에 나무가 베어지고 물길이 막히고 산자락이 도려낸 듯 잘려나가는데... 제 아무리 튼튼한 제방이라도 견뎌낼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머리 좋고 솜씨 좋고 욕심 많은 인간들은 자연재해 어쩌구 하면서 잘도 빠져나간다.
숲 속에 들어가면 숲은 사라지고 나무만 보이지만, 숲과 거리를 두고 있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숲은 오롯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의 색깔, 자기의 소리... 그 눈부신 일렁거림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시멘트벽과 마주하며 호흡이 멈추다가도 잠깐씩 그 숲에 눈길을 돌리면 숨결이 고와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자연도 격이 있다. 말하지 않는다고 -왜 자연이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이 자연을 무시하는 것과 똑같이 자연이 인간을 무시한다면 인간들은 어찌했을까? 핵폭탄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무언가를 또 개발해 내고야 말 것이다. 이건 명약관화(明若觀火)다. 그렇게 본다면 자연은 겸손하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에게 귀뜸을 해주지 않는가. 이쯤에서 관두라고, 이쯤에서 껴안자고, 이쯤에서 거리를 두고 날 보라고...그렇게 알려주는 것이다.

국가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나라와 나라는 거리를 두고 있어야하며, 크기에 상관없이 존중해 주어야한다. 절대 종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米國인지 美國인지, 저 근본을 모르는 거대한 괴물이 남의 나라에서 주인인냥 거들먹거리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하나... 효순이와 미순이는 왜 영혼까지 힘들어야하는가... 손가락에 작은 가시하나 박혔다고 매스 들어 수술부터 하려는 저 돼먹지 않은 작태를 우린 어디까지 참아야하나...효순이와 미순이가 어찌 우리나라에만 있을텐가. 이라크에서 아프칸에서... 지금도 무수한 생명들이 이유도 모른 채 꺼져가고 있는데...
밀레니엄, 21세기, 최첨단, 지구촌... 이 허울좋은 이름아래에서 지금껏 뭐가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달라는 세금 쫄랑쫄랑 갖다줘도 나라는 휘청대고... 국민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서야 함부로 덤비는 놈도 없을 텐데... 사실, 이렇게 떠들고 있는 나부터 달라져야한다. 입으로만 내뱉지말고 생각부터 달라져야한다. 그리고나서 행동해야한다.
어리석은 나부터, 이기적인 나부터, 진정한 애국이 뭔지 모르는 나부터 마음가짐을 바로 해야지... 그래서,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 입 바른 나라, 건강한 나라가 되는데 힘을 보태야하지 않을까...


“속도 줄여라”
언제 깨었는지 옆자리에 앉은 남편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생각의 길을 따라 속도를 높였더니 나도 몰래 과속을 하고 있었던 게다. 오른손을 더듬거려 테이프 하나를 꺼내들었다. 후후. 참 노래 잘하는 가수 신승훈이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라면 이런 내 마음결을 곱게 쓰다듬어 주리라.
“엄마, 휴게소 지나왔어요?”
부산에서 출발하자마자 잠들었던 찬웅이가 언제 깨었는지 불쑥 끼여든다.
“아니, 십 분만 있으면 추풍령 휴게소거든. 거기서 쉬어가자~~”
“엄마, 너무 어두워서 휴게소가 다 잠든 것 아니에요?”
“아니, 휴게소는 밤새도록 깨어있지. 걱정마.”
“휴, 다행이다. 상헌아, 일어나. 휴게소 다 왔어, 일어나...”
‘추풍령 휴게소’라고 적힌 노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곳에서 뜨거운 국물로 몸을 데우고 따뜻한 커피로 향기로운 여운도 남겨야겠다. 창문에 와 닿는 빗줄기가 누그러졌는가? 빗소리가 한결 정겨웁다.


2002. 12. 17. 淸顔愛語

<http://column.daum.net/soongnyung/ >와 동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