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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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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의 황당 , 나의 어머님.


BY 雪里 2002-12-20

선거로 인해 얻어진 휴일낮을 시골에서 보내고
온몸에 감잎 태운 냄새 잔뜩 뭍힌채로 집에 들어섰다.

행여 저녁 식사 시간 늦으면 독촉해대며
주방 들락 거리시는 아버님의 성화가 염려되서
급히 냉장고 문 열어 보며 저녁 메뉴를 골라본다.

며칠동안 시장을 안봤더니
텅빈 냉장고 안에 기다리고 있는건
새끼 조기 몇마리랑 돼지고기 덩어리 조금.

얼른 고기 삶을 물을 올리고
조기를 남비에 담아 양념한다.

세계에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중에서 일본이 꼽히는 데,
거기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많이 먹는다하여
늘 티비앞에 앉아 계시는 아버님 말씀 받잡고,
요즘 우리집도 주로 돼지고기를 삼겹살로 구워 먹던 요리 방식에서
삶아서 먹는 방식으로 횟수를 늘리고 있다.

"뭐 해 먹을거냐?"
주방으로 들어 오시며 저녁 메뉴를 물으시는 어머님,
식탁의자에 앉으시며 하시는 말씀.

"나, 오늘 투표 헛탕쳤다."
"왜요?"

"아버지 한테 아까부터 여지껏 진탕 야단 맞고 있능겨.
그래도 내가 워낙 잘못 했으닝께, 잘못혔다구 혔어."

"무슨 잘못을 하셨는데요?"

"내가 말여........"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투표를 하시러 두분이 꽤 먼 초등학교 투표소로 갔는데
어머님이 주민 등록증을 안 가져 가신거다.

여지껏 팔십되도록 살아오신 부부라지만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지지하기는 처음있는 일이고,
아버님이 열심으로 어머님을 설득하셔서
한사람으로 합의를 보게 된것이기에
한표라도 소중히 생각하신 아버님,

어머님을 기다리시게 한뒤 되짚어 집으로 줄달음 치셔서
스쿠터를 타고 어머님 주민등록능을 가져와서
두분 나란히 투표를 마치셨던거다.

오토바이 뒤에 타는건 절대 싫다 하시는 어머님이시기에
먼저 집에 도착하셔서
떠드는 티비 앞에 누워 낮잠을 청하시던 아버님,
늦게 들어 오시는 어머님에게,

"잘 찍은겨?"
"야, 그럼 잘 찍었쥬. 도장이 잘 안백혀서 지장으루 그위에다
찐허게 찍었슈.~"

"뭐라구?????"

성질 급하신 아버님,
청하시던 낮잠 혼비백산 도망가게 벌떡 일어나셔서
치매라 했다가 노망이라 했다가......

식탁에 앉아 열심히 얘기하시는 어머님 무색하게
터져버린 내 웃음은 도무지 멈출수가 없는데,
내 웃음 소리 듣고 주방으로 들어오신 아버님이
다시 재방송(?)을 하신다.

배를 움켜잡고 웃는 웃음을 거실까지 끌고 나오니
뒤 쫓아 오신 어머님 쇼파에 앉으시며,

"내 잘못만 있느게 아녀. 내가 투표 가면서
아버지 한테 물어보니께 도장 있어도 되고
없으면 지장 찍어도 된다고 해설랑...."

"애초에 당신이 잘 갈켜주지, 근디 나, 왜 이런댜~?
투표를 처음 하는것도 아닌디 거기있는 끈달린거 뭐하러 갖다 놨나 했었지 뭐냐???"

"어머님 만 그런게 아녜요. 티비 보니까 그런 사람 많아요.
어머님 보다 더 젊은 사람도 깜빡해서 그럴 수 있어요."

당신께서 찍으신 후표가 낙선 됐다고
아침 눈만 뜨면 켜 놓으시던 티비를 켜시지도 않으신채
오늘 아침을 지내시던 아버님,

하시는 행동이 꼭 어린애 같으시지만,
두분 건강하셔서 내 힘 덜어 주시니 고맙기만 한데
나 왜 이러냐고 물으시는 어머님을 보며
며느리 힘들게 할일 생길까 두려워 하시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 앞서 가슴이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