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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떼보는 글....


BY 어수리 2002-12-14

책을 읽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래도 시간 날때 책이랍시고 잡지 몇권 들춰본 것이 고작인 나날들이었다.
읽고싶다.읽다가 꼭 되새겨두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 죽 그어도 보고, 조그만 노트에 기입도 해가며 퍽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 그때마냥 책을 읽고 싶다.
다리 옆 동네의 근천스러움을 고대로 지니고 있는 이동네에서는 아직 서점하나 발견하질 못했다.학교가 두어개 있는듯 한데 그앞으로 가보면 있을까? 서점도, 향긋한 버터향 풍기는 빵가게도,먼지에 뒤덮이지 않은채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깨끗한 슈퍼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 탓인지 이사 온 뒤로 내내 집안에서만 옹송그려 지냈다. 마무리되지 않은 여러 잡일에 치여 그러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서는 산책이 즐겁지가 않아서였다.좁고 어두운 골목을 벗어나면, 구불구불한 커브를 휙휙 돌아나오는 차들이 생각없이 골목을 내달리는 아이를 위협하고,사람사는 동네가 맞나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맴도는 황량함이 기다리고 있기에,그간 산책하는 일은 단념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시내에 큰 맘먹고 나갔다 왔다.
텅텅 비어 있는 냉장고와 대충대충 끼니를 때우는데 그쳤던 우리 식구 무미건조한 미각에 활기를 북돋기 위해 대단한 장이라도 볼량으로
나선 걸음이었지만, 그 북적북적함에 치여 부랴부랴 택시를 집어 타고 서둘러 오고 말았다.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건지,어디에서들 쏟아져 나와 어디로들 가는건지, 길을 가는게 아니라 인파를 헤쳐 나간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 싶었다.
내가 그렇듯 늙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 많은 게 좋고,사람 구경이 재밌고, 하릴없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누비는게 일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사람 적은 게 좋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아예 안보았슴 싶고,거리보다는 산으로 강으로 나가고 싶으니 말이다.


늙었어도 좋고,궁색한 동네에 살아도 좋고, 책 한권 못 읽어도 좋다.
요즘 나는 걱정 없고 행복하다. 돈이야 풍족할리 없지만,이제는 지독히 쪼들리지도 않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랑할 일만 남은 좋은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