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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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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동


BY 자유인 2002-12-11

이 소동


저녁 늦게 집에 들어서는데 아내가 아이들의 머리를 감기느라 야단법석이다. 낮에 해도 될 일을 왜 밤늦게 그러느냐고 물으니 아이들 머리에 이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초등 학교 어린이들에게 이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으나 내 아이들의 머리에 이가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았다. 아내는 아이들의 머리를 감긴 다음 눕혀 놓고는 머릿속을 뒤적이며 이를 잡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큰 아이를 무릎에 눕혀 놓고 이를 잡고 있는 사이 나는 작은 녀석의 머리를 뒤적였다. 머릿결마다 하얀 서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그 사이로 새까만 이가 기어다니는 것이 눈에 띈다. 그중에 한 놈을 겨우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까맣고 납작한 녀석이 다리를 바둥 거린다.
어린 시절. 나는 이가 많았다. 머리뿐만 아니라 내복 속에도 이가 득실거렸다. 목욕을 싫어했던 나는 유난히 이가 많았다. 등이 가려워서 손을 넣으면 살이 통통하게 찐 녀석들이 잡히곤 했다. 그렇게 잡은 녀석을 손바닥 위에 뒤집어 놓으면 어찌나 피를 많이 빨아 먹었던지 바둥거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보리쌀 같이 생긴 녀석이 피둥피둥 살이 쪄서 제대로 거동조차 못하는 것이었다. 그 놈을 양 손톱으로 누르면 딱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그럴 때면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재미있어서 나는 이 잡기를 즐겨했다. 한 겨울에 화롯가에 둘러앉아 이를 잡는 것은 재미난 일이었다. 옷을 벗어 화로 위에 들고 있으면 내복 틈새에 숨어 있던 녀석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한 두 놈이 아니다. 수십 마리가 열병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기어 나왔다. 그것을 화로에 털어 넣을 수도 있으나 일일이 한 마리씩 손톱으로 눌러서 잡았다. 그러다 보면 손톱이 빨갛게 물들곤 했다. 할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줄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시원했다. 할머니는 바닥에 종이를 깔아놓고 머리를 빗어 주셨다. 빗질을 할 때마다 수십 마리의 이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던 중학교 때의 일이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면 교문에 들어설때 규율부들이 이빨이 다 빠진 이발기계로 잡아 뜯다시피 머리를 밀어버렸다. 그렇게 뜯긴 머리는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담임 선생님에 의해 또 다시 밀렸다. 졸지에 머리에는 사거리가 생기고 그 대로위로 이가 기어 다녔다. 머리에 난 사거리로 이가 기어 다니다가는 미끄러져 옷 위로 굴러 떨어지곤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손바닥 위에 놓인 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다리를 바둥거리며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모습이 오히려 귀엽기조차 하다. 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굴려 가며 바라보고 있자 아내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손톱으로 눌러 버린다. 바둥 거리던 녀석은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뿌리며 납작해진다.
아이의 머리에서 잡은 이는 모습이 특이하다. 몸에 붙은 이는 살이 피둥피둥 찌고 몸뚱아리가 허연데 비해 머릿니는 납작하고 색깔이 까맣다. 단단한 머리에 붙어 피를 빨아먹다 보니 그런가보다.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 주던 아내는 도무지 안되겠다 싶었든지 그 다음날 참빗을 사 왔다. 참빗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빗으니 이가 바글바글 떨어진다. 아내는 아이의 머리에 이가 생긴 것은 수영을 한후 머리를 말리지 않은 탓이라고 한다. 이가 생긴 이후 아내는 날마다 아이들의 머리를 감기느라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감겨도 쉽사리 이는 사라지질 않았다. 나는 여러 궁리 끝에 약국엘 갔다. 약사에게 아이의 머리에 이가 있다고 하니 요즘에도 이가 있냐며 연고를 하나 내준다. 그 약을 잠이 든 아이들의 머리에 발랐다. 약을 머리에 바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새까맣게 이가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큰 놈으로부터 시작해서 작은 새끼에 이르기까지 바글바글 기어 나온다. 그리고 아침이 되니 머리 밑에 깔아 놓은 수건 위에 죽은 이가 새까맣게 쌓였다. 아무리 머리를 감겨도 죽지 않던 이가 순식간에 전멸해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당신의 무릎에 뉘어 놓고 이를 잡아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를 잡아 주는 손길을 느끼며 나는 할머니의 무릎에서 잠이 들곤 했다. 겨울밤 등잔불 아래서 이를 잡던 일들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 잊혀진 추억을 아이의 머릿니 덕분에 잠시나마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아련한 추억이 떠올려지는 순간 문득 죽은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