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앞.
샤워끝에 머리조차 채 말리지를 못한 내 몸은 사시나무떨리듯 그렇게 떨려온다.
이러지 말아야지...
침착해야지..
다짐을 해도 마음부터의 떨림은 내 온몸에 가득 힘이 들어가게 한다.
준비된 서류들을 대충 훑어보고 있을때
뭐하니? 라는 귀에 익은 음성이 스치듯 들렸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듯 했는데...
환청이었나?
숙인 고개때문에 정문으로 들어가는 남편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었고
귀에익은 그 음성은 환청이 아니라 남편의 목소리였다.
바로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서 난 확인할수 있었고
문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나를 마치 남처럼...
그렇게 안부를 묻고는 들어가 버린것이다.
덤덤히... 그렇게 우린 서로를 마주보았고
모든 준비가 갖추어진 서류들을 내 밀었을때
떼어놓은 호적등본이 너무 오래되었으니 구청이던 동사무소던
다시가서 새것을 떼어오라는 담당자의 말을 들을수가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남편은 구청으로 향했고
나는 이혼자 대기실에서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엔.. 우리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처음 나 혼자만 있던 대기실에...
하나씩 둘씩, 그리고 한쌍씩 두쌍식..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네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었고 서로가 멀찌감치 뚝 그렇게 떨어져들 있다.
저네들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저들도 나 처럼 그렇게 힘들었을까?
저 여자도 나처럼 그렇게 미련한 사랑을 해 왓을까?
이런저런 생각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시간이 좀 걸릴거라고..
기다리지뭐. 담담히 나는 또 그렇게 대답을 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습관적인 생각을 하면서 창밖만을 바라본다.
머리속은 비어버린지 이미 오래전.
이미 시간은 오전 접수가 끝나가고
남편은 무에 그리도 조바심이 쳐지는지 수시로 전화를 하여 그쪽 사정을 설명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그리고 담당자에게 말해 우리 접수를 받아달라고 하라고.
이미 오전 접수는 마감되었고 다시 오후 세시까지 오라는 말에
서둘러 나는 법원문을 나선다.
돌아오는 택시안.
걸려온 남편의 전화를 내일보자는 말로 난 끊어 버리고.
일상에 들어간다.
내일... 가야하나?
또 다시 그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나?
철판을 들고 날라도, 행주로 식탁을 닦아도
손님들의 갖가지 주문에 그저 녹음기처럼 예예를 해도
내 머리속은 법원과 이혼서류라는 낱말들만 뱅뱅거린다.
하루가 어찌갔는지
일하는 중간중간에 난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단 한번의 답도 없이 퇴근후 집에가서 전화를 할테니 받아달라는
마지막 메세지를 끝으로 난 퇴근을 했다.
수없이 울려대는 벨소리에도 남편은 꿈적도 않는다.
전화를 하면 번호가 뜰테고 그 번호가 내 번호라는걸 확인했을텐데...
남편은 나를 피하고 있었다.
손아귀에 땀이 배도록 난 핸드폰을 쥐고는...
입력되어 있는 남편의 번호 숫자 2 번을 쉬임없이 눌러댄다.
벌써 두시간째...
할수없이 남편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나, 내일 못 갈거 같아.
그러니 기다리지마.
결국 나는 협의이혼에서 도망치고 만다.
씩씩하게 법원까지 걸어들어가 서류까지 갖추어 놓고는...
돌아와 생각하니 불현듯 두렵고 무서웁다.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날이 더 작게 남음을 난 알기에.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삶보다는 아직도 남은 미련한 사랑을 난 택하고 있다.
내 삶을 눈물로 채울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