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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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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BY 외로운 별빛 2002-11-26

여명이 어두움을 밀쳐내는 시각
철거덕 소리가 빈하늘을 울리고 희멀건 그림자
휑한 아스팔트위에 그려진다.
가로등 불빛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다가오는 그림자는
손수레 밀고오는 강너머 사는 할머니다.

끈으로 꽁꽁 묶은 수레에는
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장날에 펼칠 것들이다.

할머니를 만난건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5일장이 서는 날 어두움이 걷히면 만나는 장소
달라도 어김없이 그 할머니의 손수레 소리가
들린다.

굽어진 강따라 출근길에 오르면
산모롱이 돌아서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장날이면 예외없이 할머니들이 나와 있다.
커다란 보퉁이 앞에 두고 서 있기도 힘든 듯
삼삼오오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누면서
눈은 연신 산모퉁이로 향해 있다.

버스가 선다.
무거운 보퉁이 힘에 겨워 힘을 모아 차안에
밀어넣는다.

땅거미 내려 앉은 시각
다시 산모퉁이 돌아서면
한 대의 버스가 길 건너 선다.
아침에 장에 갔던 할머니들이 홀쭉한 보따리들고
구부정한 허리 넘어질세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선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5일장이 서는 날
변함없이 만나는 모습들입니다.


이곳은 아직 5일장이 서는 시골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5일장이 서면 계절따라 파는것이
조금씩 다르고 날씨가 분위기를 좌우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시끌벅쩍 하답니다.

오늘은 모처럼 맞는 휴일이고 장날입니다.
감기로 입맛잃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먹이고
싶어서 장에 갔습니다.

워낙 작은 장터라 좁은 골목 따라서 한 바퀴 돌면
장터가 끝나가지만 장터 곳곳이 낯익은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시사철 파는 물건들이 엇비슷하나 김장철이
끝나가지만 젓갈종류가 눈에 많에 띕니다.

젓갈장수들이 전을 펼친 곳은 봄에는 강아지랑 병아리등이
바구니안에 담겨서 멀건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 구경한다고
정신없어 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영해바다가 가까운 곳이라
싱싱하고 맛좋은 해산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울철이라 시장의 여러 곳에서 해산물파는 곳이 늘어져
서 있습니다.

영해시장에서 자주 만나던 징그러운 고기인
'물곰'과 '물메기'를 구경하는데 생선장수 아저씨가
남편 숙취에 그만이라고 자주 사라고 합니다.
징그럽다고 하니 맛은 일품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남편이 오면 한 번 용기내어 사볼까하고 웃으면서
지나왔습니다.

영해버스타고 영해아줌마들이 보따리 장사한지
몇 년후 시장에 작은 회집을 낸 곳이 있습니다.

수족관을 들여다보니 싱싱한 횟감들과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대게들이 살아서
눈을 껌벅거리고 입을 실룩거리고 있습니다.
가끔씩 손으로 수족관을 툭 건드려보는 사람들을
귀찮다는듯 실눈뜨고 쳐다봅니다.
대게값을 물어보니 그저 입만 벌리게 합니다.

대게에 얽힌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작은 아들놈 머리가 길어서 미장원에
갔다 오라고 돈을 만원 주었답니다. 근데 아들놈이 머리 깎고
들어 오면서 하는 말이 천원을 외상했다는 겁니다.
한 손에는 검은 비닐 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이것 나중에 해물잡탕할때 넣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미장원 주인에게 물어보니 우리 아이때문에
많이 웃었다고 했습니다. 그 날도 5일장이 서는
날이었는데 언제나처럼 미장원옆에 영해 아줌마가 생선을
팔고 있었는데 대게철이라 작은 대게를 팔고 있었대요

대게가 먹고 싶던 우리 아이는 할머니한테 갚을 물어보곤
세마리를 5천원에 쪄달라고 했답니다. 할 말 잃은 할머니는
아이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귀찮은 내색
않고 아이손만큼 작은 대게 세마리를 쪄서 미장원으로
배달했답니다. 미장원에서 정신없이 뜯어먹는 아이를
보고 사람들이 달라고 했으나 그냥 "드세요" 한 마디만
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답니다.

이 일로 사람들이 엄마인 나를 보면 대게 좀 사주라고
하는 말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너무 비싼 영덕대게 대신
러시아산 게 두마리 쪄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30여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동안 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사가 잘 안된다는 어묵가게 아저씨의 넋두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단골가게 과일전에 섰습니다.
오늘도 아저씨는 막걸리집에 가셨는지 아줌마 혼자 스카프
머리에 두르고 동동 거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다정하게 맞아주시며
때로는 외상도 주시고 집까지 배달도 해 주시는 그런 분들이십니다.

지난 번 섬에 사는 남편한테 과일을 보내려고 한다고 했더니
맛보라며 이것저것 과일을 내 놓으시데 그 마음들이 순수하고
고마워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습니다.

맛있으면 자신있게 웃으시고 맛이 좀 떨어지면 솔직하게 말씀
하셔서 그런 점들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멀리 안동에서 새벽같이 오셔서 일년내내 그 장소에 그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장날이 되면 젤 보고 싶고 많이 팔았는지 걱정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불가게 트럭에선 리듬도 신나는 트롯트가 계속 울려나오고
있습니다.그 옆에는 풀빵파는 아줌마가 있었습니다.붕어빵
장수는 상주를 해서 자주 사 먹는데 풀빵 장수는 오랫만에
만나게 되어 군침이 입에서 돌아 가격을 물어보니 천원에 열개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세월이 이만큼 흐르고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풀빵값은 여전히 그대로인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풀빵 틀에서 나오는 따뜻한 열기와 즉석에서 구워낸 뜨근한
풀빵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정많은 아줌마가 덤으로 더 주십니다.
풀빵이던 붕어빵이던 역시 따뜻할 때가 제일 맛있는것 같습니다.

이동식 신발가게나 옷가게들은 주로 트럭에다 옷을 진열하는데
작은 소품을 파는 가게들은 승용차에다 전을 폈습니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산골이고 점점 기온이 내려가는 오후가
되니 시장 여기저기서 손님 부르는 목소리가 커져갑니다.

주문한 게를 사서 다시 시장 한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장 이끝에서 저쪽끝까지 낮은 곳에 앉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남은 푸성귀와 추수한 각종 곡식등을 파는 할머니들의 굵은 주름살
은 여기 5일장과 함께 산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힘에 겨운 큰 보따리 수레에 담고 찬바람 가르며 딱딱한 아스팔트
길 걸어오신 할머니의 수고와 목 길게 빼고 산모퉁이 버스 놓칠세라
기다리시는 우리 할머니들이 있는 한 5일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연신 채소를 매만지고 곡식을 수북히 되박에 쌓아올리는 모습
에서 상황은 달라도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김밥이랑 떡을 팔면서 늦은 점심을 드는 아줌마들을 보았습니다.
보온 도시락 열어 놓고 김장 김치 길게 찢어 드시는 모습은 너무
나도 맛있어 보여서 차마 먹고 싶다 말못하고 떡 한 봉지만 사
왔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으면 시장은 파장분위기입니다.
배추잎하나 파잎등이 남아 뒹구니 여기가 시장인가를 나타낼
뿐입니다. 오늘 여기 방문한 모든 분들이 기쁨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내 손에도 마음에도 기쁨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너무나도 작은 5일장이지만 새벽부터 손수레로 먼곳에서 트럭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희망이 또한 숨쉬는 곳입니다.
세상이 각박하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줄어드는 물건들에서
사람들의 정이 보이고 맛이 보입니다.

산골마을에도 대형할인점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문명의 편리한점도 있지만 사람사는 냄새는 역시 시장이
아닐까합니다. 사라져가는 5일장들이 많이 늘어나는 작금의
실태에 비추어볼때 비록 자그만한 장날이지만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속에는 진정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11.24일 장날에...
독감이 걸려서 글이 뒤죽박죽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올립니다.
특히 안단테님...글이 부족합니다.
이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