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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부부 85 ( 소매치기 )


BY 올리비아 2002-11-20

가끔 매스컴에서 아파트 분양 뉴스를 보면..
나에겐 잊혀지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

사람에겐 평생에 운이 세번 찾아 온다 하던데
우리집에 있어서 첫번째 행운을 먼저 꼽으라하면
아마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89년...
한참 티브 뉴스에선 분당에 세워질 
신도시 뉴스가 도배를 하던 시절..

도로엔 모델하우스를 보러가는 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치 피난민처럼 모델 하우스를 
아예 걸어가는 모습들로 그렇게 날마다 뉴스에는 
뜨거운 신도시 탄생을 요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역시도 1순위 자격이 되었기에 
분당 시범단지에 처음으로 청약을 하게 되었다.

물론 모델 하우스는 가보지도 않았다.
뽑힐지도 안뽑힐지도 모르는데 뭐하러 가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테고..

그리고 모델 하우스를 보고 
맘에 안든다고 안 할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만 해도 우리집 식구는 세식구였기에
25평으로 청약 신청을 하고 기대반 포기반으로 
당첨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당첨일 날..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아파트 당첨됐어~~"
"뭐라구~~정말?"

전화에서 들려오는 남푠의 농담같은 진담을 
난 한참동안이나 믿지 못하고 몇번이나 되물었다.

주위사람들은 얼마나 복이 많으면 그 치열한 
경쟁률속에 당첨이 되냐며 손 좀 만져 보자는둥,

한턱 내라는둥..부러움과 시기를 한몸에 받으며..
난 그렇게 며칠을 마치 구름위에 뜬 기분으로 지냈다.

그해 12월..
드디어 계약금을 내러 가는 날이 다가왔다.

남편은 그날도 일이 바쁜지 마지막 날인 
내일 가자고 하였지만 난 그래도 좀 여유있게 
하루 앞두고 미리 다녀 오자고 하였다.

그렇게 나의 성화로 우리 세식구..
계약금 890만원을 가지고 사방이 논밭이던 
시골길 같은 분당 모델하우스로 향했다.

그제야 처음으로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곤..
남편은 계약금을 내러 접수창구 대열에 서 있었다.

난 당시 4살이었던 큰애와 임신한 배부른 몸으로 
남편의 접수를 마치기만을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순간 남편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계약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모야~ 다시 한번 잘 찾아봐~"
"이상하다.."

그 두꺼운 오리털 파카 안주머니에 
깊이 넣었던 돈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자기~ 장난치는거지?"
"아니라니깐.."

우린 순간 너무 놀라서 돈을 잃어버렸다는 확신이 설때까지 
구석구석 뒤져 보았지만 그 큰돈은 이미 우리 손엔 없었다.

핸폰도 없던 시절..
우린 서둘러 공중전화로 달려가 
비상연락을 취하고 은행에도 알리고..

평생 그렇게 큰 돈을 잃어 버린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지금도 890만원은 너무나 큰 액수이지만
그때 역시도 만만치 않은 너무나 큰 돈이었기에..

그러고 보니 매일 뉴스에선 분당 모델 하우스에 
소매치기가 기승이라는 보도가 자주 나오곤 하였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렇게 피해자가 될줄은...

집으로 되돌아 오는 차안에서 우리부부는
예민한 모습으로 서로가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 있었다.

내일이 접수마감날인데..
그 큰돈을 하루만에 어디서 구하랴..

한참을 고민끝에 난 친정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어 
그날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며 부탁을 하니 아버지께서 
내일 돈을 마련해 주겠다며 오히려 울먹이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식사중에
나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께서도 순간 
너무나 놀라셔서 저녁을 못 드셨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딸이 임신중이었던게 
걱정이 되었던지 오히려 놀라서 걱정하는 
나를 그렇게 위로해 주셨던 모양이었다.

그리곤 한참 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잃어버린 돈을 주운 사람으로부터..
아니 어떻게 된 일이기에..

약속된 장소로 남편은 나가고 한참 후에 돌아 온 
남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기술좋은 소매치기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남편의 그 두껍고도 깊은 안주머니를 눈깜짝할 사이에
돈봉투를 꺼냈는데 그만 바닥에 놓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소매치기는 지금 돈을 전해준 
그 사람과 우연히 두눈이 마주치자 차마 떨어진 돈봉투를 
줍지 못하고 그냥 도망치듯 급히 나가더라는 것이다.

그리곤 그 사람은 잠시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바로 돈을 줍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시간에 우리부부는 바깥으로 공중전화를 찾느라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뒤늦게 돈봉투를 주워서 
우리를 찾으려 그렇게 서로가 헤메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곤 한참후에 주운 돈봉투의 수표를 보고
은행에 수소문 끝에 우리와 연락이 되었으니,

"세상에..어쩌면..이런 일이..."

물론 현금보다는 수표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찾을수 있음에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교직에 계셨던 분으로 정년퇴직하신 노부부셨다고 한다.

남편은 너무나 고마워서 감사의 뜻으로 
작은 사례금을 건네 주었는데 한사코 안받겠다는 
그분들에게 간신히 내던지듯 전해주고 왔다고 한다.

남편은 그 분들의 인품에 감격하는 듯 하였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 역시도 만감이 교차했다.

세상은 이렇게 두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는 자와
내 것이 아닌 것은 가지려 하지 않는 자..

참으로 그날의 하루는 어찌나 길고도 짧았던지..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89년 12월..
우린 다음날 계약금을 무사히 지불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난 어제와는 다른 한껏 여유있는 
마음으로 옆에 앉은 남편에게 괜한 시비를 걸어본다.

"칫~ 다 내 덕분인줄이나 알어~"
"뭐가?"
"내가 어제 오자고 했으니 다행이지.. 오늘 마지막날 와서
소매치기 당했으면 어쩔뻔 했어? 아파트 그냥 물 건너 간거지 뭐.."

남편은 순간 나보다 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야!! 어제 왔으니까 소매치기 당한거지
내 말데로 오늘 왔어봐라..그럼 소매치기 안 당했지.."

참내..이야기가 그렇게..되남?ㅡ.ㅡ;
(ㅎㅎ헷갈리넹..^^;;)

에휴..하여간..
참으로 사람 사는 일이라는게..
이렇게.. 한편의 드라마를 찍듯 

좋은일 궂은일 다 겪고 사는게.. 
모든 이들의 人生드라마의.. 

공통된 대본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