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적정 노인 기준 연령 높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66

만남


BY ps 2002-10-24


"우~ 웅~~"
태평양을 건너가는 단조로운 비행기의 소음에 언뜻 정신을 차리니,
30분 가량이 흘렀다.
고국방문(29년에 다섯번째)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을 설친 지난 밤때문에
잠깐 졸았었나보다.

전가족 이민으로 모든 식구가 L.A.에 살고 있어서, 처가집에 일이 있어야
한국나들이를 해보다가(내 결혼, 장인 환갑, 장모 환갑),
11년 만에 그저 쉬러 방문했던 2년전 여름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하게 나무들이 많아진 서울 근교의 산들...
'생고기' 등의 생소한 단어와 통통 튀는 '이름' 등으로 어색하게 보이던
길거리의 간판들...
잘 발달된 공공교통 수단, 특히 지하철,...
그리고 미국보다 나아 보이던 컴퓨터와 핸드폰 문화...

좋았다. 다시 돌아가는 길이.....
L.A.보다 많이 복잡하고,
오염된 공기로 외출에서 돌아오면 약간 칼칼해지던 목과
더러워진 소매자락들의 기억도,
고국을 다시 방문하는 나의 기대감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미국의 어느 공항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처음 보는 인천공항의
위용에 놀라고...
처가집 식구들과의 반가운 재회...
2년만에 많이 늙으신 장인, 장모님께 안스러움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뒤바뀐 밤낮때문에 아침이 되어도 멍~하던 머리가 오후가 되어 조금 나아졌을 때,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저~ 안진호 선배님 되십니까?"
"네, 그런대요?"
"저, L.A.에서 온 ps 입니다."
"아! 무사히 오셨군요."

1년 반 전에 후배의 E-메일을 통해 우연히 들린 아.컴에서 알게 된
초등학교 선배이신 안진호(지노)님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주셨다.

월요일 아침,
난생 처음 '번개'를 위해 인사동 가는 길...
처음 아.컴에 들어와 신기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자들만의 세계로 알고 '눈팅'만 하다가, 안진호님 덕택에
남자도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레 글을 올리던 기억...
다음날 내 글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하며 '컴'을 열던 설레임...
내 글에 달려있는 답글을 확인하던 순간의 기쁨...
그리고 가끔 있는 번개모임 후기를 읽으며 느꼈던 부러움.....

제법 들떠있는 마음이 마치 대학 일학년때 처음 가졌던 미팅에 나가는 것 같다라고
느끼며 혼자 미소를 짓는데, 갑자기 당혹감이 몰려왔다.
집을 나올때 분명 만나는 장소를 확인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만나기로한 미술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뭐였드라?'
'두자인 것은 확실한데...'
흥분된 탓일까?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생각이 안 나고,
결국은 내려서 선배님께 전화를 거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조금 창피스럽기는 하겠지만.

다행히도, 지하철을 갈아타고 안국동에 내릴 때, '경인'이라는 단어가
반갑게 다시 생각이 났고, 길가에 있는 옷가게에 들려 길을 물은 뒤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주중이라 별로 붐비지 않는 찻집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니,
안진호 선배님이 머리속에 그리던 모습과 별로 틀리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한분, 두분.....

on-line에서의 만남이 off-line으로 이어졌을 때의 느낌을 여러번
읽어본 탓일까? 모두들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조금도 낯설지가 않았다.
마치 오랜지기인양,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어지고...
스스럼없이 농담도 던지고...
서로서로의 눈맞춤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찻집 마당에 탐스러운 주홍빛 감을 가득 안고 서있던
30년만에 보는 가을의 감나무도
이 반가운 만남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듯 했다.


***
그날,
'먼 곳에서' 온 저를 만나고자
어려운 발길을 하신 여러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