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 안개 좀 봐!"
"염려 마세요, 엄마 태우고 제가 함부로 운전 하겠어요?"
옆에 앉아 흘낏 훔쳐본 계기판 바늘이
80 이란 숫자를 가운데 두고 이리 저리 움직인다.
20 미터 거리도 채 남기지 않고
안개가 싯뿌옇게 모두 지워 버린 길을
평상시 속도로 달리는 차속에 앉아 있는 나는,
별로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도
죽음으로 연결 될것 같은 두려움으로 가득차서
눈만 앞에 둔채로 몸은 잔뜩 긴장되어
나오는 목소리의 톤만 높힌다.
"안개가 심하니까 감속해야지!"
"알고 있습니다, 어마마마!"
능청을 곁들인 여유스런 대답에
많이 편안해 지긴 하면서도
나는 벌써
진한 안개의 위력에 온몸을 굳히고 있었다.
현저히 줄어든 속도감으로 보니
어디쯤인지 바로 앞도 안보이는듯 싶다.
그렇게 안개속을 헤매다가
지역상 경계인 터널을 빠져 나오니
여긴 완전히 딴세상 별천지처럼
맑은 가을 햇살이 눈을 부시게 하고 있다.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아들이랑 나랑은
동시에 같은 소리를 한꺼번에 토한다.
"와~! 와우~!"
학교에 도착하여
아들이 내린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니
무거운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쳐 메며
아들은 내게 연신 조심 운전을 당부한다.
"염려마, 엄마는 과속 안해."
"안개 조심 하세요, 엄마 보내고 나면
한참동안 불안해요."
"불안이랑 염려랑 묶어놔!"
우회전 하기전에 올려 보니
백미러 속에 아들이 아직 서 있다.
혼자 맥없이 입웃음을 웃으며
직각에 가까운 커브길을 돈다.
새벽반 강의를 신청한 아들을
학교까지 바래다 주고 돌아 오는길.
그새 안개가 많이 걷히고 나니
마치 도둑 맞았던 물건을 찾은것처럼
길옆의 풍경이 새삼스레 반갑다.
어느새 색옷으로 갈아 입고
천연덕스레 길옆에 서 있는 가로수.
산허리를 뚝 잘라 만든 새 길옆에
옮겨 심어 진듯 모여서
소담스럽게도 잔뜩 피어 있는 구절초.
누런 논 사이에 서 있는 트랙터는
어느새 한마지기도 더 뵈는 논을 깎아
뒤에 펴 놓고는 앞으로 앞으로 가고 있다.
그대로 두고,
일년 내내 보았으면 좋을 황금 들판.
나는 늘 이때쯤이면
철없이도 왜 자꾸 늘 이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지.
대책없이 생각 해대는 내가 우습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어 오는 바람.
감기 기운으로 코끝이 매케 한데도
서늘한 바람을 폐 깊숙히까지 들이 마셔 본다.
정말 좋은 계절인데.....
그냥 어우렁 거리다 보내긴 안타까운 계절인데.
한나절을 온통 놀아 버리고
숙제도 못하고 학교 가는 아이의 아침처럼,
집으로 되돌아 오는 내내,
가슴속 어느 구석엔가 뭉쳐 있는
말로는 쉽게 표현 안되는 그 뭔가 때문에
끌고온 차가 집앞 벽에 코를 부딪기 직전에야
섬? 놀라 나의 위치를 깨닫고 있다.
"운전 조심 하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