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고 드센 여자.
사소한 일이 마음을 분노에 차게 만들 때 나는 몹시 독하고 드세진다.
분노를 삭히기 위해서 내 키가 작았을땐 몇 시간이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다가
다리가 뻗뻗해지면 주저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한토막 휘장을 걷었다.
분노를 대신한 다리가 아픈 것으로 생각을 돌리고 나서 보면 간간히
잊혀지기도 했었다.
거저 키만 작았을 때 생기는 일이란 것이 타인과 연관된 일들이 아니라
자잘한 나 자신의 일상과 관계된 일이였으므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분노와 서러움이 머리끝까지 올라설 때의 일이란
모두 숨을 쉬고 사는 타인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내 경우엔 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
가깝다 못해 피와 살의 겹합들인 사람들과의 씨름인 것을 보면
독하고 드세진다는 것은 치사해지고 작아진다는 것이리.
이제는 마음의 서러움을 삭히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무작스럽게 일을 하는 것으로 나를 달랜다.
그래서 가끔 마음을 삭힌다는 것이 자해의 길은 아닌가 생각한다.
감자를 깍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쪽이 잘려서 피가 흐르는 것이라든가...
쓰레기들을 봉투에 넣다가 자신도 모르게 찔리는것이라든가.
방바닥을 닦는다고 걸레질을 하다가 분노로 변한 힘이 마침내 가구의 한 구석에
손을 찧는 일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육신의 마디들이 상해져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아픔과 통증으로 마음이 억지로 잡아지는 경우도 많다.
그럴땐 20킬로의 쌀 가마니도 불끈 들어버리고
무겁다고 들지 못해 몇날 동안 거실에 놓여져 있었던 감자 한박스도 이빨을
앙당 물고 들어다가 베란다 바람이 통하는 곳에 놓아두는 것이다.
것뿐인가... 벽에 꼭 필요한 하나의 못을 박는데에도 서너번의 요청이 있는데도
스쳐지나가 버리면 그 분노에 찬 마음으로 망치를 들고 서너시간이 되어도
상관없이 못질을 하는 것이다.
그런때에도 영락없이 나는 손에 망치질을 하고야 만다.
시멘트 벽은 시멘트 못이라도 그렇게 순순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쨍쨍하니 불꽃이 튀고 서너번 대가리를 맞은 뒤에도 튀어나와 방 어느구석으로
숨어버리고 말아.. 너 아니면 못이 없냐..그렇게 나는 못질도 한다.
독백을 일삼으며 하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둘이 되면서부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받았던 구겨진 서러움부터
부서진 마음까지 우 하고 돋아나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게 되고 찝찔한 것이
스며든 후에 깨물어서 생긴 붉은 양념까지 먹어지는 것을 발견하고야 만다.
갈수록 얼마나 마음이 드세지고 독해지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자잘한 상처들이 삶의 여러 자리에서 잘 자라고 있다는 것으로 나를
짐작할 뿐.
그러나 돌아보면 참 아무 일도 아니다.
피식하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무일도 아닌 일에 그렇게
목숨을 걸고 덤비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곤두서 휘청거릴땐 그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사람을 잡고 ,
감정을 너울거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수양은 아무나 쌓는 것이 아니며
도사나 거사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며
부처님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며
죽어 아무나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생의 여러날을 거쳐 숙성되고 암실에서 발효하여 수없이 걸러져 다시
암실에 보관되어 은은한 빛과 향기와 맛으로 보여지기는 살아생전에
어려울 아줌마인 나.
나는 점점 드세지고 날마다 억세지려고 사는 것은 아닌가.
새끼를 키우는 에미가 된 연후에 짐승같은 모성애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에미 노릇도 못하면서 애미로서만 살아간다고 느끼는 나를
오늘은 콩씨 하나로 바꿔 비내린 산밭에 나를 묻어 두고 싶어라.
다시 연한 싹을 키워 올리는 순일한 생명이고 싶어라.
200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