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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이 어두운 남자


BY dlsdus60 2001-06-16

"맨날 그렇게 헤매요?"
"전에 다 와 본 길이잖아요?"
"...........?!"
"우회전 아니예요!...좌회전을 해요!"
"잠깐만요...이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머리 꼭대기에서 김이 나오고 손바닥에서는 땀이 배어 나온다.
눈을 부릅뜨고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길은 도무지 햇갈리기만 한다.
이럴땐 가물가물한 길보다 옆에 앉아 떠드는 여자가 더 미워진다.

"조용히 좀 해봐!"
"어어!!~~ 저쪽으로 가야 해요!"
"안가!!~~ 이리 가도 돼!"
"이리 가면 돌아 가는 길이 잖아요?"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차라리 당신이 운전해라!..나는 뭐 심봉산 줄 알어?"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이제는 이마에도 땀이 배어 나오고 승용차 앞 유리창에 성에가 서린다.
머리카락이 곤두 선 화를 참으려고 남자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꺼내 문다.

사실 남자는 운전을 십여년을 하였으면서도 길눈은 세살박이 어린애 같다.
여행을 비롯한 촬영할 일이 많아 지방 국도도 수 없이 다녔지만 차를
가지고 나갈 때면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밤길을 운전할 때는 더욱 그런데 옆에 앉은 여자는 남자의 속내도
모르면서 운전을 잘 못하며 기억력도 나쁘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그것도 양에 차지 않았는지 내가 운전을 하면 당신 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둥,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까지 길눈이 어두어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광고까지 해 댄다.

남자는 십여년을 넘게 운전을 하면서 별다른 교통사고 한번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프라이드도 있는데 여자가 이렇게 남자의 운전 실력을
과소 평가를 할 때마다 남자는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귓바퀴를 스치는 바람이 실크처럼 부드러워지는 사월이 오면 남자는 두렵다.
이런 봄날에 년중 행사처럼 ?아 오는 졸음이 남자를 더욱 괴롭힐 것이다.
얼마 후면 친구들과 여자의 성화에 못이겨 지방 나들이를 가야 할지 모른다.

사월이 오면 남자는 운전대를 놔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