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이상한 하루다.
뚜렷한 주제도 없는데 글이 쓰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마음이 안절부절이다.
아줌마 컴에 올린 글들은 일상적인 일들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잘도 풀어 놓는데 나는 그게 영 되질 않는다.
어찌보면 이런 불안한 심사도 조금은 가상의 공간에 매료되는 중독성(?)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시절 국군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 편지도 쓰지 못해 얼마나 쩔쩔맸던가.
지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내 짝꿍은 문학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지 구구절절이 한장 한장 잘도 넘어간다.그런 옆짝꿍에게 적당한 문구를 슬쩍 도용까지 하면서 한장을 겨우 메워 날려 보내면 답장이라는 것이 교탁에 서너통씩 얹혀지는데 그것만은 은근히 기다려지곤 했다.
하물며 연애편지야 오죽할까. 써 본 기억이 없다. 참 1통 있었나.
이성한테 받은 편지라곤 얼굴에 듬성듬성 붉은 여드름이 징그럽게 돋아 이름석자보다는 멍게라는 별명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그 친구에게 온 편지 한통이 고작이였다.
오오 애재라! 오오 통재라!
나는 그때 직감했다
남자에게 처음으로 받은 분홍빛깔 편지지의 애틋한 사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우리집 발발이가 갈기갈기 찢어놓은 종이조각은 분명코 그것이였다.
발길질로 세차게 걷어차인 멍멍이의 비명소리는 한동안 멈추지 않고 나는 조각난 편지조각을 황금지폐 주어담듯 조심조심 담아 마루바닥에 철푸덕이 앉아 요리조리 뜯어 맞추는데 내가 눈빠지게 찾는 "사랑하는 ㅇㅇ 아" 글귀는 눈에 띄질 않았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대하듯 그러기를 한참
해독할수 없는 러브레터는 서서히 끓어 오르는 부아를 이기지 못하고 휴지통으로 구겨 쳐 넣고 말았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그후로 러브레터는 더 이상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매력이라는게 철철 넘치진 않아도 헤프지 않고 적당한게 그래도 괜찮은 여잔데 그 부분 만큼은 지금도 이해할수 없다.
그 황홀한 처녀시절 달콤하고 절절한 연애편지라도 주고 받았으면 조금은 글쓰는 재주에 보탬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글쎄 그것도 핑계가 되나...
아무튼 나는 쓰는데 보다는 읽는데에 익숙하다.
언제부터인가 책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 행복에 겨운 순간들이 차츰차츰 많아졌으닌까.
오늘따라 이름은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나는거야.
우리 조국을 빛낸 그 훌륭하신 분 그분은 말씀하셨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것 같다고.
감히 그것과 견주어 말한다면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 안한 텁텁한 기분이랄까?
틈틈이 이책 저책 닥치는데로 읽다보면 궁금했던 부분들이 서로 다른 책속에서 상호보완작용이 되어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줄때 그 또한 책을 읽는 기쁨이 되어 준다.
가끔 내 주제를 파악 못하고 부지 불식간에 엄습해 오는 주체할수 없는 역마살.
오래 전 소녀시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역마는 내 몸 속에 똬리를 틀고 목말라 했다.
텅 빈 일요일이면 목적지 없는 버스에 몸을 싣고 낯선 종점에서 내려 어둠이 내릴때까지 하염없이 흐르는 방황을 부축이곤 했다.
이제는 대청댐에 수몰되고만 꿈결같이 흐르던 그 잔잔한 강 내탑
질퍽거리는 언덕받이길을 터벅터벅 올라가니
아늑한 산자락에 폭 안긴
비 개인 구마니의 보석처럼 빛나던 그 물빛
그곳엔 영원히 마르지 않을 유성이 흐르고 있었다.
밭둑 옆에 옴푹 자리잡은 우물은 쉴새없이 철철 흘러 넘치고,
인가는 두런두런 사이좋게 자리 잡았건만
구마니 사람들은 기척도 없고
저녁 연기만이 굴뚝에서 뿌옇게 타오르고 있었다.
방문만 열면 금방이라도 반겨줄 것 같은 고향의 낯익은 얼굴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구마니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그후로 두번 다시 볼수 없었다.
막걸리 두사발에 취기가 올라 세상이 내것이나 된 듯 신탄진행 완행열차안에서 호탕하게 떠들었던 치기,
배꽃이 눈처럼 하얗게 흩날리던 봄날의 유성,
무심한 나룻배만이 행인을 기다리고 있는 어부동의 한적한 나룻터는 쓸쓸함만 더해 주었다.
갖가지 수목이 자라는 만수원이 있는 진잠,
한 시인의 고향이며 만인의 고향인 옥천,
지금처럼 흔하지 않은 벚꽃은 새터 저수지에서 마음껏 그 자태를 뽐내고
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오가는 사람을 유혹하곤했다.
그리고 흑석리,
그리고 내가 한번쯤은 다녀온 잊혀진 대전 근교의 시골 마을들.
그때는 휘적휘적 잘도 돌아 다녔는데
지금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 나질 못하고 바둥거리는 내가 안스럽다.
홀홀단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수만 있다면...
나는 또 슬며시 책을 펼쳐든다.
곁에 두고 즐겨 읽는 기행 산문집만이
이제는 내 역마를 잠재울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