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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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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春 1


BY 봄비내린아침 2001-06-12

靑春1


그는 언제나 곤색잠바를 입고 다녔다.
나는 언제나 곤색 재킷을 입고 다녔다.
그는 언제나 보일듯 말듯, 웃을듯 무표정한듯
天이란 친구의 등뒤에서 머뭇대곤 했었다.
나는 언제나 땅을보고 다녔고, 웃을땐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죽여 웃었으며, 美란 친구의 손을 놓지않고 다녔다.

나는 그녀를 통해 세상을 보았고, 닫힌 도시를 보았으며 그녀가 잡아준 손은 나의 바깥세상으로 향해가는 유일한 통로인걸로 여기곤 했었다.

그와 나는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고, 그렇게 세달쯤을 보는듯 외면하는듯 스치며 다녔다.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니, 그의 친구의 친구의 입을 빌어, 다시 내 친구인 美를 통해 줄장미 만개하는 5월의 끄트머리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가......너 좀 보재"
'누가'란 말끝에 나는 금새 그를 그렸다.
왜 '누가'란 말끝에 그의 벌겋게 열오른듯한 얼굴이 내 앞에 떠다녔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쩔래?"
살짜기 장난기가 밴 웃음으로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호기심을 숨기고 있는 친구 美에게 나는 얼굴을 붉히며 뭐라고 답을했던지...
잘 생각나진 않지만 그냥 허옇고 싱겁게 웃음으로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렇지만 분명 나는 그를 인정하고 있었지 싶다.

그와 내가 첨 만나던 날, 학원옆 제과점 유리창은 전에없이 넓어보였다.
그 큰 유리창 너머로 나의 친구 美와 그의 친구 天이 호기심과 장난기를 가득 묻힌 눈으로 빠꼼 들여다보고 있었고, 또다른 무리의 또래들이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머리가 아줌마처럼 굽슬굽슬한 학원강사도 긴 교편대를 휘적대면서 힐끔힐끔 몇번을 기웃대고 있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까?
"어쭈ㅡ 제법들인데.."

그와 나,
둘은 줄곧 창밖과 물컵과 그도 아니면 바닥만을 뚤어지게 내려다보면서 한마디도 뱉지 못하고 있었다.

밖에서 동그란 눈을 요리조리 굴리던 美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콩닥 콩닥 치며 제과점 문을 밀고 들어섰을때 난 크게 한숨을 뱉었다.

숨막힐 거 같던 공백기가 끝나고 그도 나도 물을 한모음쯤 마셨으리라..

美는 대뜸 빙수부터 하나 시켜놓고 내 얼굴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또 보더니 '깔깔'소리를내어 웃고있었다.
마구 터져나오는 웃음을 저도 어쩌지못하고 아예 온몸을 들썩대며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그날 그와 나는 몇정거장쯤을 걸었던 거 같다.
앞에서서 가야하나, 뒤에서서 가야하나, 나란히 걸어야 하나, 온통 머리속이 윙윙대었다.
버스에 오르기전에 그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었다.

그와 떨어져 펼쳐보니 고서냄새가 풀풀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집이었는데,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나의 첫사랑인지 풋사랑인지 모를 그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성큼 성큼 나의 靑春속으로 걸어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