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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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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살기


BY 쟈스민 2002-09-16

한주일의 일과를 마치는 토요일 오후...
아이들에게 점심을 챙겨 먹이고는 커피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나면 으레껏 밀려드는 피로와 졸음을 떨구어 버리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차 한잔을 마심과 동시에 푹신한 쇼파의 감촉을 애써 뒤로 한채 벌떡 일어나
신발장 정리에 들어간다.

일단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신발과 잡동사니를 모두 끄집어 내니
현관 바닥이 그득하다.

"아이구 뭐가 이리도 많이 들어 있다냐 ..."

작아서 이제는 발이 들어가지도 않는 아이들의 구두와, 운동화,
그리고 한때는 주인의 이동을 도왔던 고단한 흔적이 역력한 낡은 신발들 ...
또는 유행이 지나서 촌스럽기 그지 없는 신발들이 참 많기두 하다.

그 많은 것들을 난 그냥 아깝다는 이유로 죄다 끌어 안고 살았던 것이다.

언제 이 많은 걸 다 정리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났지만,
이제 더이상은 그 일을 미루면 안되겠다는 한계에 다다랐음이 절감되었기에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시간이 가면 가지런히 정리되었을 신발장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 놓는다.

한 박스는 족히 될 분량의 신발들을 버리고
모래 한톨 없이 개운하게 닦아낸 신발장에 가족들의 신발을
종류별로 단정하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까지 개운하다.

일요일엔 새로운 계절 맞이 옷장 정리를 대대적으로 해야 겠다 ...
내심 흐믓한 미소를 지어보며 힘을 실어 나에게 보낸다.

다른날보다 이른 아침을 먹고는 대충 부엌정리를 마친 다음
옷장에 있는 옷을 죄다 꺼내어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려다 보니
집안은 온통 난장판이다.

세탁소에서 온 듯한 철사 옷걸이는 왜 그리도 많은지 ...
드라이 클리닝 후에 딸려온 비닐도 만만치 않은 숫자 ...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어야 할지 막상 시작은 했지만
막막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 ...
스스로를 토닥이며 최대한 손놀림을 빨리 하려 애쓴다.

그런데 그 순간 왜 그렇게도 많이 부끄럽던지 ...

쌓아 두고 사는 일만이 여유롭게 사는 일인양
그토록 부지런히 주워 나르기만 하며 살았던
내 자신이 참 많이도 부끄러웠다.

작아서 못 입는 옷, 유행이 지나 너무도 구식이 되어 버린 옷가지들을
언젠가는 소용닿겠지 ... 하며
버리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꼭 필요한 물건만을 갖추고 단촐하게 사는 일이
어쩌면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는 일이 될수도 있는데
모든 것이 넘쳐나 펑펑거리며 살았던 듯 싶은 내 과거의 시간을
정리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반성해 본다.

종이박스로 몇박스의 옷들을 정리하여 헌옷 수납함에 넣고
작아진 아이들의 옷은 조카들에게 보낼 요량으로 따로 싸 두고는
지난 여름 한철 가족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해 주던 대자리도 깨끗히 닦아둔다.
따스한 감촉의 카펫을 깔아 두니 집안이 한결 아늑하다.

쌀쌀한 저녁 바람에 보일러를 돌리니 방안의 온기가 나를 감싸주어
하루동안의 작은 수고로움은 정말이지 큰 위안이 되어 준다.

금요일 저녁 출장가서 일요일 오후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이 곁에 없어서
무거운 자리를 질질 끌며 세워둘때도 그를 생각한다.

물건을 새로 사야 할 일이 있으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의 종류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만
버리는 물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될수 있으면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하고 심플한 것들이
오래도록 편안하게 곁에서 함께 지켜주는 듯 하니까 ...

일요일 하루는
버리고 사는 일이 얼마나 깔끔하게 살 수 있게 해 주는가를
몸소 체험한 하루였다.

또한 무엇인가를 사들일 때는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생활습관을
이번 게재에 가져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로도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음을
가끔씩은 이렇게 비워내는 생활로 확인하고 싶다.

힘들었지만 소중한 나의 살림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커다란 수확을 가져다 준 시간이다.

아침 등교길에
가을 옷을 예쁘게 차려 입고 나서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제의 내가 아주 많이 대견해 져서
흐믓한 웃음 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