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딸이 커가면 남편 모르는 비자금이
있어야 한다며 예전부터 나를 닥달하였다.
그러나 숨겨놓은 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을정도로
항상 빠듯한 월급쟁이살림이니 월말만 지나면
가계부에 더 이상 적을게 없는터라 빈말로 들었었다..
큰애,작은애가 고등학교 다닐때는 아침마다 문제집값으로
3,4만원씩은 족히 가지고 나가니
남편 모르는 주머니를 찰 이유도,여유도 있을턱이 없었다.
몇년전에 여유가 조금씩 생겨 남편 모르게
처음 내이름으로 적금을 부었었다.
숨길려고 의도적으로 그런건 아니었다.
남편은 옛날부터 월급봉투를 던져주고 나면
죽이되든 밥이 되든 나몰라라 했으니,꾸어쓰던,남아서
적금을 붓던 말던 묻지도 않했고 나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달리 쓸곳을 정하지도 않았지만,적금넣을때마다
점차 불어 나는 내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이 은근히
나에게는 든든한 빽이 되었다.
그런데, 년말에 4개월정도 만기를 남겨 놓았을때
남편이 느닷없이
'혹시 당신 이름으로 적금 넣는것 있냐'고 물었다.
나는 글쎄 하며 얼버부렸고,다 아는것 처럼
배우자재산도 등록해야된다며 은행에서 확인서를
떼놓으라 했다.
아니 어떻게 알지? 조사하면 다 나오나? 아님,지레짐작인가
혹, 자진신고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남편이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다음날 털레털레 맥없이 은행에서
잔고 확인서를 떼서 갖다 주었다.
언제 이렇게 적금을 다 부었냐며 씩 웃는 남편이
얼마나 얄밉던지...
그 다음달부터 적금의 신비로움이 깡그리 없어져서
붓기가 싫어졌다.
그래도, 끝까지 부어야겠기에 시들하게 다 넣었었다.
만기가 되었다고 은행에서 연락이 왔지만
도장을 찾지못한다는 핑게로 차일피일 미루었다.
남편 모르는 돈이 있다한들 내가 궂이 따로 쓸데가
있을일도 없지만 그래도 그 적금 통장을 꺼낼때 마다
은근히 기분이 좋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