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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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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별명이야기


BY 라니안 2000-11-20

내별명이야기


신생아적 내 별명은 꿀꿀이 " 돼지 " 였다.

아기를 항상 45도를 유지한채 안아야하고 , 모유를 충분히 먹여야하고 ,

이유식은 고단위 영양가 있는걸로 만들어 꼬박꼬박 먹이나 검사하고......

아버지는 나를 키우시면서 엄마의 눈물깨나 뽑으셨다한다.

덕분에 난 ' 모 분유회사 ' 우량아 선발대회 결승전 까지 나갔었다한다.

결승전에서 사회자가 " 아주머니 이 아기는 무얼먹이고 이렇게 건강하게 키우셨나요 ? "

우리엄마 왈 " 제 젖만먹였지요. "

그 말한마디에 탈락 했다고 지금껏 믿고계시는 우리엄마.

" 내가 우쨀라고 분유회사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가서는 모유 타령을 했는지 모르겠다. "

" 니가 제일 우량아 였었는데 내가 말잘못해서 떨어졌잖아. "

우리엄마 지금까지 그때의 분유한상자 , 아기옷등 놓쳐버린 상품생각에 무척 아까워 하신다.

초등학교때 내별명은 똥더펄이...

그때 , 아버지는 미제 전축을 무척 애지중지 하셨더랬다. 늘 전축을 매만지시고 음악을 듣곤하셨다.

나도 신기해서 항상 그 주변을 맴돌다 보니 전축뒤에댄 구멍숭숭 뚫린 합판이 늘 궁금했었다.

아버지가 안계신 어느날 궁금함을 참지못하고 합판을 빼서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그만 뚝 하고 부러뜨렸다.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내가 안 그런척 슬쩍 끼워놨지만,

아버지께 금방 들통이 나버려 엄청 혼이 났었고 듣기에도 민망한 " 똥 더펄이 " 란 별명을 얻었다.

별명 덕분인지 정말로 더펄이가 되어서 항상 무얼 쏟든지 , 깨뜨리던지 아님 내가 넘어진데 또 넘어져서 상처투성이 훈장을 온 몸 가득 달고 다녔었다.

지금까지 내 팔꿈치에는 그때의 훈장이 증거로 남아있으니 별명이 괜한게 아니었나보다.

중학교때 내별명은 친구들이 지어준 따발총이었다.

내가 숨도 안쉬고 따따다다 말을 할때면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어댔다. 난 그재미에 더욱더 말을 빨리 내뱉고 손짓발짓 정신없이 수다를 떨곤했었다.

어쩔땐 너무 말을 빨리 하려다보니 내 혀가 꼬이기조차 했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때는 입시전쟁으로 다들 누구 별명을 부르거나 지어줄 생각도 못하고 공부에 지쳐있던 시기라 내 별명도 그땐 없었다.

대학교때 다시 내 별명은 써클 선배들이 지어준 "왕 방울 " 이되었다.

내눈이 크다고 지어준 별명인데 내가 놀래기라도 해서 눈이 더 커지기라도 하면 그 모습이 재미있다고 일삼아 나를 놀래키던 선배들...

" 어머 ~~ 깜짝이야 ... " 놀라는척 나는 무진장 내숭을 떨었고... 그때마다 재미있어 하던 선배들.......

참 , 다커서도 그렇게 유치할수가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만 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어느 눈먼 사나이가 나의 왕방울 눈과 구불구불한 긴 파마머리에 반하여 " 블란서 인형 " 이란 별명을 지어주었다.

나는 내심 내 별명중에 이별명이 가장 맘에 든다. 그래서 내별명이 한때는 " 블란서 인형 " 이었노라고 자랑할라치면 우리식구들 다같이 합창을 한다.

문화방송 로고송에 맞추어 " 뚱~ 뚜 뚱 뚱 뚱~, 뚱 돼~~지 !!!~~~~ "

그 옛날 " 블란서 인형 " 이라고 칭송을 해대던 우리신랑까지 아이들과 합세해서 말이다.

내 별명이 신생아적의 그 돼지로 다시 돌아온건 두아이의 남긴 밥과 간식을 아깝다고 마구 먹어댄후 부터 일것이다.

아니, 내몸이 조금 불어 우리아이들이 놀리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신랑이 더 신이나서 놀리는건 정말 배신이다.

아무래도 이전의 블란서인형은 불가능할테고 빨리 뚱돼지는 면해야 할터인데...

뚱돼지별명은 정말 싫다 싫어~~~~~~.